언론속의 국민
성인 34% “골프 친다”… 1인당 장비·의류 지출액 ‘세계 최고’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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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2만달러 때 골프 열풍
박세리·신지애·박인비 등 활약
빼어난 성적에 대중골프붐 일어
비교 중독증에 빠진 ‘과시 욕망’
서열화된 교육 경쟁도 한몫해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로열앤드에이션트골프클럽(R&A)의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골프장이 많은 나라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골프데이터테크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을 미국, 일본 다음으로 큰 골프장비 및 골프의류 시장으로 꼽았다. 5위에 그친 골프 종주국인 영국을 앞질렀을 뿐 아니라 1인당 지출액은 세계 최고다. 유원골프재단의 ‘한국골프산업백서 2020’에 따르면 국내 골프산업 규모는 12조9991억 원에 달한다.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콘텐츠의 대표 격인 게임산업(15조6000억 원)과 엇비슷하고 음악산업(5조8000억 원)이나 영화산업(2조3000억 원)보다 크다.
한국인의 골프 사랑은 일차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의 결과다. 보통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되면 사람들이 골프를 치기 시작하고 2만 달러가 되면 골프 열풍이 분다고 한다. 한국은 1995년과 2007년에 각각 이 기준을 넘어섰다.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2010년 신지애의 한국인 최초 세계랭킹 1위 등극, 2015년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자골퍼의 눈부신 활약과 빼어난 성적도 한국인을 골프에 빠지게 만든 요인이다. 한국인의 유난한 골프 사랑에 이런 긍정적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인류학에 따르면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 기후에서 진화했다. 그래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바나와 비슷한 환경에 대한 선호를 갖는데, 이것을 사바나 가설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풍경 사진을 보여주고 어디에 살고 싶은지 물었을 때 낙엽 숲, 침엽수림, 열대우림, 사막보다 사바나 환경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넓은 초원에 간간이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사바나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골프장의 풍광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의 높은 산지 비율과 도시화로 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좁은 공간에 몰려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난폭해지거나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려면 일정한 자기만의 영역이 필요한데 한국의 도시민에게는 이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된 1972년 가수 남진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라고 외쳤다. 노래처럼 한국인은 탁 트인 전망과 널찍한 마당을 갈망한다. 사바나 가설에 따르면 골프장은 이런 사람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해방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자기평가를 위해 남들과 비교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유독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더 강한 편인데, 어릴 때부터 경험한 경쟁적인 교육환경의 결과다.
많은 한국인은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비교 중독증에 빠져있다. 도로에 유달리 외제차나 대형차가 넘쳐나는 것도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골프는 오랫동안 자기 과시와 신분 상승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놀이였다. 골프의 귀족 스포츠 이미지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몇 년째 향후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 운동 1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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