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2022년 광화문광장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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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흐리면서 더웠다. 금세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리다가도 불볕이 내리쬐는 일을 반복하는 늦장마 한가운데였다. 재개장한 서울 광화문광장은 날씨만큼 어수선했다. 어디서부터 광장인지 경계는 모호했고 늘어선 나무는 주변 건물들과 어지럽게 만나고 있다. 세종대왕 좌상의 뒷모습은 여전히 어색하며 바닥 패턴은 산만하다. 유일한 구조물인 유구 전시장 지붕이나 버스 정류장 디테일은 어설프다 못해 조악하다. 한때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 조롱받던 광장은 세계 최대의 버스 정류장이 됐다. 그 외에는 다른 기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길에 발을 담그고 있는 중년의 관광객들이나 1970년대 어린이대공원에서 경탄을 자아냈던 분수 터널을 21세기 광화문광장에서 만나는 감회는 착잡하다. 도시 공간에 대한 몰이해이며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퇴행적 증표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로 옆 청계광장이나 시청광장 또는 한적한 산골 계곡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을 굳이 조선 제일의 길지에서 펼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전 광장은 2009년 폭 100m에 왕복 20차로였던 세종대로를 양편으로 줄이며 생겨난 공간이었다. 넘쳐나는 자동차가 발전과 부흥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건너 도시가 사람 중심, 그것도 걷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일대 사건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광장을 다시 조성한 데는 그늘 한 폭 없이 삭막하다는 불평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세계 어느 광장에도 그늘은 없다. 나무와 카페 같은 휴식 공간이 있어 광장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주변이지 광장 자체는 아니다. 비워진 공간이 광장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 비움이 밀집한 도심에 햇볕과 바람이 통하게 하고 시원하게 트인 경관을 제공하기도 한다.
만든 지 십 년 만에 광장을 갈아엎게 만든 진짜 이유는 (아무도 말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지만) 공간적 거부감이었다고 본다. 광화문을 중심에 두고 차도와 건물로 대칭이 극도로 강화된 이전 광장은 시선이 중심으로 모여 빨려 들어갈 듯한 역동감을 줬다. 이는 매우 서양적인 공간 전개여서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다. 실제로 지하도를 통해 광장 중앙으로 올라서며 드러나는 광화문과 경복궁, 뒤로 이어지는 북악산 경관에 압도된 경험을 서울의 최고 포토존으로 꼽은 외국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이 아찔할 만큼 현대적이며 서양적인 광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좀 더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 대개 동양의 광장은 좌우로 넓은 비례를 바라보며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정부종합청사를 헐어내고 좌우로 넓은 장방형의 광장을 만들었다면 그늘이 없더라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딕 성당의 역동적인 내부 공간과는 다르게 푸근하고 익숙한 산사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도시와 건축에 중요한 과제와 질문을 남긴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인구 1000만 도시의 중심 공간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도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건물이 가깝게 모여 사는 곳이다. 그 밀도가 교류를 만들고 그에 따라 혁신과 문화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장소다. 건축적으로는 건물과 외부 공간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상호작용을 이루는 곳이며, 그 꽃이 광장이다. 따라서 광장은 가장 분명한 도시적 태도이며 선언이다.
둘째는 도심에서 역사적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도시 공간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만나야 하는가? 광화문광장은 서울 시민의 것을 넘어 국가의 상징 공간이다. 그 광장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시민의 모습은 과연 친근함만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며 위락시설로 바꿔 조선의 상징 공간을 해체하려 했던 일제의 만행과는 다른 것인가?
마지막으로 과연 백 년 후, 우리 후손들은 이 광장을 세련되고 진취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했던 조상의 유산으로 기억하며 보존하겠는가? 의문이다. 광장의 의미와 품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흐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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