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워싱턴에서 사라진 북한 /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8월 하순 필자는 워싱턴에서 거의 보름 동안 체재하면서 미국 당국자, 전문가 및 언론인들과 많이 만났고, 오늘날 미국 조야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살필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인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제일 먼저, 미국은 국내외에서 오래전부터 경험하지 못해온 폭풍에 직면해 있다. 중국과의 대립, 우크라이나 침공, 중동의 혼란, 수십 년 만에 등장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극에 달한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등을 감안하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에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거의 없다. 북핵은 수많은 외교 도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많이 주변화되었다.

 

둘째 이유는 북한과 회담을 할 때 미 행정부가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과 회담을 한다면, 그 이유는 비핵화보다 핵 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외교 엘리트 사이에서 북한 비핵화의 희망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러나 핵 군축을 위한 회담을 시작한다는 것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행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다면, 의회와 언론의 매우 심한 비판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지지율에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북핵 개발 속도를 느리게 할 수 있는 핵 군축 협상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할 수도 있지만, 이 정책을 선택하는 행정부는 외교 재앙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업적으로 인정받을 희망조차 없다. 그러므로 미 행정부가 북한과의 회담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결국 미국 측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공식 입장으로 계속 견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를 바꿀 대통령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지 알아봤는데, 전문가 대부분은 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편으로 흥미로운 변화도 있다. 거의 20년 동안 매년 워싱턴을 방문해온 필자가 이번에 발견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남핵 이야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요즘에 남한 엘리트층 사이에서 핵개발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워싱턴에서도 서울에서 새로 생긴 담론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에서 남핵에 대한 태도는 주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만큼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남핵을 허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존재한다. 2016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이러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민주당 측에서도 이러한 생각이 없지 않다.

 

워싱턴에서 받은 또 다른 인상은 미국이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신냉전과 매우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중국에 대한 태도다.

 

미국 조야는 지난 3월 보수 후보가 당선된 것을 많이 환영한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래서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이 대립에서 미국을 어느 정도 도와줄 의지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대만 혹은 다른 이유로 미·중 간 무력 충돌이 생긴다면 한국이 어느 정도 참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투가 발생할 경우,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미군의 한국 공군 비행장 사용에 동의하기를 많이 희망한다.

 

중국과 인접한 나라인 한국이 이웃 강대국과 충돌을 피하려 노력하는 것에 대해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반중국 노선에 열심히 참가하는 것 대신에 조심스러운 대중국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한 일정한 실망과 불만을 워싱턴 조야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쨌건 트럼프 시대 극에 달했던 워싱턴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바이든 시대인 지금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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