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솔의 역사별곡] 지난 7월 28일, 차세대 신형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이 진수되었다. 해군은 전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과 호국 인물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했다고 명칭 제정이유를 밝혔다. 조선의 제22대 국왕인 정조대왕은 18세기 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이끌며 학술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고 금난전권 폐지 등 여러 개혁적인 업적을 세웠고 장용영 설치와 수원화성 건설 등 군사적으로도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타당한 이유이다.
▲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 (사진= 대한민국 해군)
하지만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조선, 그리고 근대 시기와 현대 대한민국까지 많은 위인들이 해군 함정 명칭에 반영되었음에도 백제 출신 인물의 이름이 들어간 함정 명칭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기록 자체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족한 면도 있으며, 해군 함정 명칭을 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해군 함정의 명칭을 정할 때, 한민족 내부에서의 군사적 업적보다는 한민족을 통틀어 국가를 수호하거나 개혁한 인물의 이름을 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같은 평가를 받을 백제 출신의 인물들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백제 출신으로도 충분히 이같은 자격을 가진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외세와 싸워 호국정신을 지킨 영웅으로 사법명, 찬수류 등 백제의 제24대 어라하(왕을 뜻하는 백제의 고유명칭)인 동성왕 재위 시기 3차례에 걸쳐서 북위의 백제 침공을 패퇴시킨 4명의 장군들을 들 수 있다. 당연히 이 시기 재위했던 동성왕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당시 북위는 효문제 치세로 최전성기를 보내며 고구려와 같이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한 강대국이였고 백제는 불과 몇 년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의 위기를 겪었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군사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중남부에 대한 외세의 침공을 저지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백제는 기록 부족과 위 사례를 제외하고는 한민족계 국가를 제외한 다른나라들과 전쟁을 벌인 적은 거의 없으나 앞서 언급한 정조대왕함의 사례처럼 꼭 직접적인 전투로 국가를 수호할 필요는 없다.
백제는 문화와 정치체제를 비롯한 종합적인 면에서 일본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4~5세기 까지만 해도 일본 열도는 제대로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여러 호족들이 난립해있었는데 그중 야마토 정권이 가장 유력한 세력이였다. 이후 야마토는 7세기에 통합된 일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같은 배경에는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끈 명군인 근초고왕을 비롯한 인물들이 있었다. 근초고왕은 칠지도를 야마토의 제후왕에게 하사하고 수많은 백제 문물들과 지식인들을 야마토로 보내 일본열도에 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령왕을 포함 여타 대부분의 백제 군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무령왕은 중국 남조와도 활발히 교류하며 무령왕릉과 같은 백제 문화의 걸작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아직까지 백제 인물들이 함명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면이 존재한다. 물론 국가 각각으로 보지 않고 인물들로만 보면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아직까지 함명에 반영되지 않은 분들이 많이 계신다. 이러한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상을 빛낼 수 있는 백제 출신 위인들도 해군에서 함명 명칭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었으면 한다.
이찬솔 객원칼럼니스트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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