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고위 공직자에게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것은 공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즉각 지불해야 할 비용이 발생할 때 투명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법인카드는 액수 제한과 함께 주점을 비롯한 부적절한 장소나 오후 9시 이후, 또는 휴일이나 주말 결제는 아예 불가능하게 제한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사전에 품의(稟議)하고 예산을 받아 결제하는 것과는 달리, 법인카드 사용의 정당성은 일정 부분 사용자의 윤리적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대다수 공직자가 이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법인카드 사용의 기본 윤리를 경기도지사 시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혀 갖지 못했나 보다. 경기도 비서실에 근무했던 A 씨의 ‘부패 행위 신고서’(공익신고)에 따르면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광범위한 개인적 용도에 무단 사용해 왔다고 한다. 대선 후보 시절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후보는 가족과 부하 직원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자신이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점만 사과했었다. 이번 공익신고는 그가 법인카드 불법 사용을 직접 지시 또는 묵인했다는 것인데, 만일 사실로 판명된다면 대선 과정의 거짓말과 함께 공금횡령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법인카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한 액수가 적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액수와 상관 없이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면 그것은 범죄다. 더욱이 이 대표가 공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면서 양심의 가책도 못 느꼈다면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공직윤리가 전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던 셈이기 때문이다.
더 기막힌 일은 법인카드를 사용한 장소와 방식이다. 신고자에 따르면, 근무 기간 중 거의 매일 오전 이 대표가 아침 식사로 먹을 샌드위치와 샐러드, 컵과일 등을 경기도청 관사 및 이 대표 자택으로 배달했고, 부인 김(혜경) 씨가 먹을 과일을 수시로 구입해 경기도청 관사에 채워 놓으면 김 씨가 주기적으로 관사를 방문해 성남시 자택으로 가져가는 것을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그 밖에 이 대표의 옷 세탁 비용 등 생활비 지출에도 경기도청 법인카드가 사용됐고, 개인적으로 보내는 명절 선물 비용이나 심지어 집안 제사 음식도 모두 법인카드로 처리하면서 용도는 ‘직원 격려용’으로 기재했다고 한다. 먼저 현금 결제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비서실에서 송금하거나, 각 음식점에 미리 장부를 마련해 두고 결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민 혈세를 사용(私用)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히 공금횡령과 공금횡령교사에 해당한다. 범죄 이전에 공직자윤리를 정면 위반한 것이며, 고위 공직자로서 결코 국민 앞에 나설 수 없다. 더욱이 이처럼 치졸한 방법으로 국민 혈세를 훔쳤다면, ‘○○치’라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행정학과를 나와 평생 행정과 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니 고위 공직자나 공공기관장을 지낸 친구가 많다. 그들과 평생 친구로 지내지만, 단 한 사람도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함께 만나는 친구들도 항상 N분의 1로 나눠 냄으로써 그들이 공직자로서의 품위와 윤리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이 대표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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