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보면 항상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물에서도 땅에서도 자유롭다는 생각이다. 개구리와 관련된 속담이나 비유도 많다. “우물 안 개구리.” 그동안 우리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에 한 우물만 팠다. 그 우물 안에서 편안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그 우물이 언제 말라버릴지 모른다. 아니,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나 자신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우물을 파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살아야만 하는 시대에 3, 4개 전공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고, 동시에 기본적인 생존기술도 익힐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생존기술이 그리기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기와 글쓰기에 동시에 능숙한 사람을 나는 ‘새로운 양서류’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기와 글쓰기는 자신의 재능에 상관없이 능력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다. 또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메타인지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 능력이 떨어져도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성공한다. 바둑으로 예를 들면 수읽기가 조금 약해도 형세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최후의 계가에서 승리한다.
하나의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부른다. 메타인지를 개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I(인공지능) 시대에 철학을 배우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칸트를 읽는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예전 어른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철학은 그저 어려운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일제 강점기 유산이다. 나는 철학을 배우는 것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된다고 믿는다. 단순히 철학책을 많이 읽는 것을 넘어 철학자처럼 생각하기를 이해하고 스스로 철학자가 돼보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일상생활이다.
철학하는 기업이 빅테크 된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시장에서 과일을 고를 때도, 옷가게에서 옷을 살 때도, 도자기를 구경할 때도 한국인은 왜 손으로 만져보냐는 것이다. 서양 상점에서 흔히 보는 “Please do not touch”라는 팻말은 한국 전통시장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것의 의미는 유아적이다? NO! 이는 미성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통합된 지각 방식이다. 통합된 감각은 시각과 촉각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더 풍부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고, 몸으로 이해하는 동양적 지혜다.
‘몸의 철학자’로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그가 말하는 지각의 핵심은 ‘가역성(reversibility)’이다. 이는 지각 경험에서 주체와 객체가 서로 뒤바뀔 수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오른손이 왼손을 만질 때 만지는 주체와 만져지는 객체의 역할이 계속 교차된다. 만지는 동시에 만져지는 경험을 말한다.
인간이 나무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무를 보는 동시에 나무도 나를 ‘본다’. 음식이 우리 몸의 일부가 되듯이, 보는 대상도 우리의 지각 경험의 일부가 된다. 이는 우리와 세계가 같은 ‘살(chair)’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영어 ‘flesh’(살·고기)를 프랑스어로 ‘chair’라고 한다.
이런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재미있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통찰이 떠오른다. 동양 사상과의 만남도 가능하다. 불교의 연기설이 말하는 모든 것의 상호 연결성, 도가의 자연관이 보여주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은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깊은 관련성을 보인다. 이런 관점의 확대가 심지어 돈벌이와도 연결된다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철학하는 기업이 빅테크가 된다.
‘TV 부처’가 들려주는 이야기
1974년 독일 쾰른의 한 갤러리. 청동 부처상이 TV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TV 화면에는 부처상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백남준의 대표작 ‘TV 부처’다. 부처는 자신을 보고, 또 자신이 보여지는 모습을 본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TV 앞 부처는 왜 미소 짓고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하나라는 깨달음의 미소일지도 모른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의 철학, 백남준이 보여준 테크놀로지와 명상의 만남,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만나는 지점, 거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 이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살’의 철학으로 본 한국 문화는 세계와의 직접적 교감을 의미한다. K팝은 이렇게 탄생했다.
물질세계와 적극적 상호작용, 신체를 통한 직접적 경험 중시, 감각의 통합적 활용에 대한 사례 중 하나가 조선 막사발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도자기를 고를 때 ‘맛’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사발은 맛이 좋다.” 도자기의 ‘맛’이란 무엇일까.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보는 것, 만지는 것, 그리고 맛보는 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독특한 감각 문화이며, 모든 경험이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살’ 개념으로 보면 이는 인간과 사물이 서로 교감하는 완벽한 순간이다.
오늘날 조선 백자 감정가들도 도자기를 볼 때 반드시 손으로 만져본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명한 막사발의 경우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손에 쥐었을 때 균형감과 무게감이 일품이다. 이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험이며, 도자기의 진정한 가치는 보고 만지고 사용하면서 온몸으로 느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투박해 보이는 막사발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의 손길과 시선이 축적된 ‘살’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를 통해 우리는 한국 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돼야 한다. 철학하는 개인, 철학하는 기업, 철학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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