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서재

Episode 20. 이일환 교수님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님의 서재 Intro 이미지

 


교수님의 서재 Name Card

나만의 책 이야기 Title Bar

나에게 서재는 피난처다

나의 서재는 피난처라고 생각해요. 피난처는 영어로 'Haven'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e'자만 붙으면 천국이 되지요. 피난처가 곧 천국이라……. 피난처라 해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현실을 나쁘게 보면 나 자신을 잡아먹는 정글이라는 뜻이고, 그런 정글로부터 나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피난처가 천국이 될 수 있겠지요. 저는 이 두 다리로 살아가지만 두 다리 중 한 다리는 현실에, 또 다른 다리는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 곳을 바라보며 걸치고 있습니다. 이 다리로는 현실을 관망하며 볼 수 있지요.

교수님의 서재 소개 이미지 1


라디오DJ를 꿈꾸던 나의 청년시절

책을 말하기 전에, 나의 젊었을 때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의 내 인생을 보면 반은 책이고 반은 음악이었지요. 당시 70년대에는 팝송이 크게 유행했었는데 나는 정말 팝송중독, 마니아였어요. 이태원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라디오DJ를 하면서 이 쪽 분야로 해보고 싶어서 한창 열정을 가지고 알아봤었지요. 그런데 라디오DJ 하시던 분이 나에게 '안하는 게 낫겠다'고 말리더라고요. 하하. 그 때부터 내 인생의 다른 반쪽이었던 책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특히 대학원시절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더욱 많이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 저는 당시 다니던 대학교에 있는 인문학 책은 모조리 다 읽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터무니없는 말 일지 몰라. 하하. 하지만 그 때는 호기어린 열정에 도서관에 책을 읽었다는 나만의 표시도 해가면서 도서관 전체를 그 표식으로 가득 채워놓는 꿈을 꾸곤 했었는데……. 아, 그 때를 떠올리니 문득 그리워집니다.

영시 읽어주는 교수님

국문학과 비교했을 때 영문학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서사시(Epic)'가 있다는 점입니다. 내용 자체에 흥미를 가지면 장편의 스토리를 지닌 서사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부딪히며 강렬하게 느낀 치열성을 지닌 영시들도 많지요. 그런 시들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며 천천히 영문학에 다가와 주었으면 해요. 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가 여기 여러분께 삶의 위안이 되는 영시 한 구절 읽어드릴까 해요.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작나무(Birches) 中"

교수님의 서재 소개 이미지 2


바이블과 니체를 아우르다

이제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충격적이었던 두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하나는 바이블이고, 또 하나는 니체이지요. 서로 병립하기 힘든 두 권의 책이지요. 바이블은 꼭 기독교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그런 영역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책이 바로 바이블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니체는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쪽에서는 니체가 금서로 되어있어요. 니체는 바이블과는 대조되어 저 세상을 꿈꾸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아! 지금 니체 이야기를 하면서도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제가 환희를 가지며 한 때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읽었던 책이거든요. 바이블과 니체, 병립하기 힘든 이 두 권의 책을 껴안고 가는 제가 혹시 모순덩어리는 아닐까요.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왔다고?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고 물어봐요. 영문과 학생인데 말이죠.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왔다고 해요. 이거 참, 하하. 사실 영어공부 자체와 영문과는 큰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영문과는 말 그대로 영어 '문학'을 공부하는 곳이니까요. 문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힘들겠죠. 요즘 학생들이 영어 공부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토로하는데, 이럴 때 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디지털 사회에요. 이럴 때 일수록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이 필요하거든요. 학생들에겐 그런 감수성이 아쉽습니다. 나 때만해도 이렇지는 않았거든요. 사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책을 읽으면 상상하게 됩니다. 상상 속의, 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은 책 밖에 할 수 없어요. 책을 읽으며 자극을 받아서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하고 내 나름의 유토피아도 만들 수 있어요. 책 자체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느끼면 영어공부는 저절로 됩니다. 아까 제가 팝송을 좋아했다고 했었죠? 팝송을 좋아하다보니 영어도 재밌어졌습니다. 그렇게 내용 자체에서 재미를 찾는 쪽이 훨씬 편하고 이로우며 더 오랫동안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서재 소개 이미지 3


가끔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요즘 대학생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 다는 것, 아쉽죠. 이럴 때마다 젊은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매몰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기에도 바쁘죠. 하지만 보이는 것만 좇는 것도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책으로 눈을 돌려보세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눈을 돌려보세요. 상상하고, 설사 그것이 망상이 되더라도. 망상? 재밌지 않나요? 내가 책 속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현실화가 되기 힘들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분명 언젠가 여러분께 힘을 줄 겁니다. 지금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꿈

저는 에즈라 파운드(Ezra Loomis Pound)라는 미국 시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800페이지가 넘는 에즈라 파운드의 두꺼운 시집이 있거든요. 제가 3분의 1쯤을 번역해서 현재 시중에 출판되어있어요. 일생동안 나머지를 번역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리고 내 나름의 창작집도 하나 내보고 싶어요. 그것이 시집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시나리오가 되었든. 아, 사실 저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시나리오도 쓰곤 했답니다. 그렇게 어떤 장르든 창작집을 내보고 싶어요. 영문학으로 일생을 걸어왔는데 아직도 내 꿈은 완성되지 않았네요. 대학시절 도서관의 모든 인문서를 읽겠다는 그 욕심으로, 때로는 장대한 서사시에 한 없이 작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며, 그리고 아까 소개한 자작나무 시 속의 주인공처럼 다시 쉬었다 일어서며… 그렇게 문학 속에서 제 꿈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내 인생의 책 Title Bar

 

 

 

추천 책 Cover 역사
헤로도토스 ㅣ 열화당 ㅣ2009년 | 성곡도서관 링크

기원전에 나온 오래된 고서. 추천이유를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생각하면 보통 딱딱하고 읽기 부담스럽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를 이야기로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인류 최초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추천 책 Cover 햄릿
셰익스피어 ㅣ 민음사 ㅣ 2009년 | 성곡도서관 링크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 이 책을 읽으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광기가 무엇인지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을 꼽고 싶다.
 
추천 책 Cover 즐거운 학문
니체 | Dover Pubnsㅣ 2007년 | 성곡도서관 링크

이 책은 '창조적으로 생각하기'에 관한 책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신'들의 경험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생각하기'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 창조적 사고가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을 보여준다. 너무 심각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깊게 파들어가기를 멈추고, 표면 위에 서서 그 위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말해 주는 책
 
추천 책 Cover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ㅣ 민음사 ㅣ 2006년 | 성곡도서관 링크

소위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만들어보려 하다보면 급진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데,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보겠다는 급진적인 생각이 거꾸로 인류의 역사가 악몽이 되어왔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서 인간의 역사는 사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발전해야한다.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은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며 점진적인 발전에 대한 호소력이 돋보이는 책.
 
추천 책 Cover 글쓰기와 차이
자끄 데리다 ㅣ 동문선 ㅣ 2001년 | 성곡도서관 링크

포스트 모더니즘의 바이블처럼 된 책. 이 책에서는 우리가 짜여진 틀 속에서 생각하는 것, 기존에 있었던 것들을 과감하게 해체시켜 버린다. 모든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생각의 자유유희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사고를 확 터준 점에서 굉장히 파괴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전글 Episode 21. 박민 교수님 (법과대학 공법학전공)
다음글 Episode 19. 변추석 교수님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