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우리대학 박물관, 기야 이방운 <사군강산삼선수석> 서화첩 영인본 발간 / 사진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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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담 - 조선시대 후기에 이름을 떨친 산수화가 기야 이방운(1761~1815?)이 남한강 일대를 그린 서화첩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의 영인본이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발간되었다. 개교 60주년을 기념하여 500부 한정 비매품으로 발간된 본 화첩은 실물크기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화첩에 실린 시문과 발문은 황선재 학예부장이 그 뜻을 풀어 놓아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화첩에 담긴 8곳의 명승지는 도화동, 평등석, 금병산, 도담, 구담, 의림지, 수렴, 사인암으로 현재 단양 8경과 제천10경에 해당하는 명소이다.
<사군강산삼선수석> 서화첩은 1802년 당시 청풍부사로 재직 중이던 안숙이 남한강 일대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시로 짓고, 당대 유명한 산수화가인 이방운에게 당시의 풍경을 그리게 하였다. 이후 김양지라는 사람으로부터 발문을 얻어, 시와 그림과 글을 같이 엮어 내어 탄생한 것으로 시(詩),서(書),화(畵)의 조화를 이룬 서화 명첩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첩 제목의 뜻을 풀어 쓰면 ‘네 개 군의 강과 산, 그리고 세 신선의 고사가 얽힌 물과 바위’ 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네 개 군’은 조선시대 당시 단양,청풍,제천,영춘을 이르며, 현재의 충북 단양과 제천 일대이다.
최근에 크게 주목받고 있는 산수화가 이방운은 진경산수의 대가로 알려진 정선, 그리고 정선의 제자이자 이방운과 인척관계였던 심사정 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화가로서 조선후기 회화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받던 인물이다. 그의 화풍은 남종문인화풍과 진경산수화풍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표현의 사실감은 덜하지만 대상을 부각시키는 역동적인 구도는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견줄 수 있다. 특히 본 서화첩의 ‘금병산’ 부분은 서양의 일점투시법에 가까운 기법으로 제천시의 청풍호반에 있는 금병산과 한벽루를 그려 넣어 이방운 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의 홍보차원에서 제작된 본 서화첩 영인본은 학교관계자와 각계 인사들에게 전달되었으며, 동문의 요청으로 바다를 건너가 교포가 운영하는 미국의 한국문화 기념실에도 기증된 바 있어 우리대학과 한국의 문화를 동시에 알리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200년 전 당시 조선의 풍경이 이 서화첩 속에 그대로 담겨 있어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특히 의림지는 200년 전의 모습이 지금과 상당히 닮아 있어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고증자료로서의 역할을 한다. 올해로 개설 34년 째인 우리대학 박물관은 이번 영인본의 발간에 대한 각계의 호응이 높아 정식으로 출판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 이하 화첩에 수록된 산수화 자료 - 도화동 - - 의림지 - - 구담 - - 금병산 - - 평등석 - - 사인암 - - 수렴 - - 사군강산삼선수석 (화첩의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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