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직업의 세계] YTN 보도국 선임기자 박성호(영어영문 79) | |||
---|---|---|---|
YTN 보도국의 박성호 선임기자를 만나기 위해 남대문에 위치한 YTN을 찾았을 때 마침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는 긴급뉴스가 전해졌다. 이 속보가 터지기 전에 사진 몇 장을 찍어두었고 질문지도 미리 전달했던 게 다행이었다. 박 기자는 곧바로 뉴스에 투입되어 사건의 의미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도 제시했다. 올해로 26년째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는 그는 어떠한 기사에도 주저 않고 뛰어드는 진정한 현장기자였다. Q. 뉴스채널인 YTN 기자로 사는 것은 많이 분주할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바쁜가요? A. 긴박한 소식을 전할 때는 늘 긴박하고 분주합니다. 여유가 있을 것 같은 때에도 겉으로만 그래요. 언제 어디서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긴장해 있어야죠. 출퇴근 시간이야 개인별로 하는 일의 성격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살아 있는 뉴스’를 위해 항상 ‘깨어 있는’ 자세는 YTN에서 반드시 필요해요. Q. 보도국 선임기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현장을 뛰는 기자들과 역할이 다른 것인가요? A. 저에게 맡겨진 주요 임무는 비중 있는 사건이나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방송에 출연해서 사건의 의미를 분석해 내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영향 등에 대해 전망도 합니다. 그러나 배경을 알아보거나 파장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실 확인이 우선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임기자도 기본적으로는 현장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은 일선기자의 도움을 받고 선임기자는 분석과 전망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선임기자 중에서도 중점이나 기획 리포트로 방송에 기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Q. 언론계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1979년 문과대학에 들어왔을 당시 현재의 The Kookmin Review의 전신인 The Kookmin Times 라는 교내 영자신문사가 있었어요. 그 당시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국제화 시대가 진전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영자신문사에 관심을 가졌어요. 3년간 일했는데 배운 것이 아주 많았지요. 언론에 대한 사명감도 조금은 느껴보았고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란 느낌도 들었어요. 졸업과 동시에 The Korea Herald에 들어갔고 그 뒤 26년째 기사 쓰는 ‘쟁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기자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건은 무엇인가요? A.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입니다. 한 국가가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온 국민들의 운명이 어떻게 남의 손에 맡겨지는 지를 분명하게 목격했습니다. 나라가 망할 수 있는 계기는 전쟁이 아닌 경제적 실패가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언론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Q. 워싱턴 특파원도 지내셨는데,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A. 특파원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만 3년을 했어요.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이 가장 기억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어요. 또 하나의 대통령이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미국사회 의식의 근간이 바뀌는 의미가 있었어요. 민주주의를 구현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큰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Q. 특파원 시절 다른 경험들에 대해 추가로 말해주신다면? A. 미국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한국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다 보니 두 나라 언론을 늘 비교하게 됐어요. 글쓰기 양식도 달랐지만 언론이 어떤 식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려고 하는지 그 방식과 관점에 관심을 쏟았어요. 문화 차이가 있으니 어느 한 쪽이 꼭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차이점을 잘 비교해 보면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한 기사들이 적지 않다고 봐요. Q. 모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셨는데요.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A. 후배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것들까지 주려고 노력했어요. 강단에서 강의는 물론 강의 이후 음식점에 가서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인생 얘기도 같이 나눴어요. 학생들이 고맙게도 크게 호응해 줬어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강의했던 기억이 나요. 2003년 2학기부터 2년간 매우 보람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때 가르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YTN 기자가 되기도 했으니 저의 열정이 증명된 셈이겠지요? Q. 방송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요즈음 입사전략은 제가 언론계에 들어올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요. 제 상식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면 이미 너무 낡은 것이 됩니다. 입사전략은 저보다는 최근에 입사한 선배들에게 묻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칙은 있을 거예요. 바로 치밀한 논리력입니다. 논술 책을 몇 권 본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현상들을 이리 저리 연결시켜 어떤 패턴이나 일관성을 찾아내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책을 읽든 대화를 하던 주변 상황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떤 주제를 위해 엮어가게 됩니다. 이런 것이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주요 자질이라고 봅니다. 특히 방송기자에게는 텍스트적인 논리를 영상논리로도 표현해 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Q. 방송기자는 특히 말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발음도 깨끗해야 되겠지요? A. 말을 잘 하는 능력이 있다면 좋은 일이죠. 발음까지 깔끔하면 금상첨화이지요. YTN을 포함해 좋은 기사라고 판단되는 보도를 선택해 면밀하게 분석하세요. 그리고 따라서 읽고 써보기도 하세요. 발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발음을 들어보고 연습을 해 보세요. 모방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발음을 개선할 여지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말을 잘 하려면 우선 자신의 논리가 정연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면 말을 할 때 확신감이 분출됩니다. 듣는 사람도 신뢰를 보내게 됩니다. 혹여 발음에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신뢰감이 이를 상쇄해 줍니다. Q.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언론인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나의 보도가 나를 포함하는 공동체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정확한’ 보도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사실에 근거한 보도가 해답이겠지요. 사실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부단히 검증을 하는 것이지요. 특정한 세력을 위해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해석을 덧붙여서도 안 되겠지요. 간단히 말하면 공정한 보도를 해야겠지요. 공정보도를 위한 외부적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언론 스스로 되돌아볼 여지도 많아요. 저 스스로도 늘 반성을 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사명감을 늘 의식하고 있는 것이 기본일 것 같습니다. Q.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A. 작은 목표부터 세워서 차근차근 실천하세요. 과정을 기록하세요. 일정 시점마다 목표 대비 실적을 비교하세요. 제가 학생 시절에 실천한 것은 별로 없어요. 다만 계획을 짜는 일은 늘 했어요. 나의 좌표를 늘 인식하려고 노력했어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요. 그러다 보면 실천되는 것들도 있어요. 금융상품의 수익률이나 야구 타자의 타율을 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는 않아요. 그래도 처음에 목표를 크게 잡지 않으면 큰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작은 성과를 이뤄내면서도 한쪽으로는 먼 곳을 분명하게 응시하며 노력하는 후배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전글 | [또 다른 국민인] 쁘리비엣, 국민! |
---|---|
다음글 |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 박은선(회화00)을 만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