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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무역 1조달러 유지하려면/이은형(경영학전공) 교수

올해 우리나라의 수출입을 합산한 교역 규모가 1조달러를 넘겼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에 이어 세계 9번째의 무역대국에 진입한 것이다. 수출액만도 5570억달러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것에 비해 막상 국내에서는 큰 반응이 나오지 않고 덤덤해 하는 분위기다. 만약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교역의 역사를 되짚어가면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필자도 '잘했나 보다' 정도로 넘어갔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지난가을부터 우리 경제발전의 주역들을 만나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수출과 공업화 정책에 기여한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홍성좌 전 상공부 차관과 오원철 전 경제수석과 같은 분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무역사, 특히 수출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홍 차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진흥확대회를 6년 동안이나 맡아서 했던 분이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위장병을 얻었다고 한다. 오 수석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공업정책을 펼쳤고, 특히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정책을 실행했던 분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손꼽혔던 1960년대 초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돈(달러)이 없었다. 달러를 벌자니 수출을 해야 했고, 수출을 하자니 공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출 제일주의' '공업입국'이라는 국시가 정해지게 된 배경이었다. 수출 1억달러를 기록했던 1964년 수출품목을 보면 가발, 갯지렁이, 실뱀장어 등도 들어 있다. 공산품이 없으니 무엇이든 내다 팔 수 있는 것은 수출하려 했던 시절이었다.

새삼 '그 시절을 아십니까' 노래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조달러 시대의 의미와 시사점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역액 1조달러를 달성했지만 계속 성장을 지속해 나가는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홍 전 차관이나 오 전 수석의 말을 빌어 무역 1조달러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성장동력'은 50년을 관통하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째, 수출의 중요성이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70년대 38%, 80년대 24%, 91~95년 23%, 96~2000년 43%, 2001~2005년 65%에 이르렀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수출경쟁력을 가진 덕분에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무역대국에도 오를 수 있었다. 수출의 우리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제조업(공업)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환경에 따라 업종별 부침이 있지만 부단한 기술개발에 근거해 일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수출품목이 1990년대 품목과 비슷하지만 제품의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독일의 '건재함'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서비스업, 소프트웨어,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제조업의 경쟁력 기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빨리 타파해야 한다. 기술자, 기능공을 우대하여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로 몰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1조달러 무역대국의 성과. 샴페인을 터뜨리고 자만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과소평가하여 제대로 그 의미를 새기지 못해서도 안될 일이다. 특히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원문보기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711374868579

출처 : 아시아경제 기사입력 2011.12.2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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