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연극 '벤트'와 '중립국' / 연출 김혜리(공연예술학부) 교수

두 명의 여성 연출가, 보편성을 설득하는 감각

창작산실과 뉴스테이지 공연이 1·2월에 올라가면서 공연 비수기였던 겨울시즌이 바빠졌다. 탈북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최진아 연출의 창작산실 작품 ‘선을 넘는 자들’, 뉴스테이지의 신인 연출가 김지나·설유진·문새미 등, 어느 해보다 여성 연출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예술감독 교체에 따라 뒤늦게 발표된 올해 국립극단 라인업에 새롭게 김수희와 구자혜의 이름도 보인다. 김수희 연출의 이름은 남산예술센터 라인업에도 보인다.

마침 재공연이 올라간 김혜리 연출작 ‘벤트’(1월 31일~2월 1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와 함께 문새미 연출작 ‘중립국’(1월 26일~2월 3일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을 챙겨보았다. 김혜리는 뉴욕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국내와 미국에서 배우와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문새미는 런던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지난해 차세대열전 ‘리처드 3세’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새로운 성장의 무대들이다.
 


‘벤트’, 배우의 말과 존재감이 돋보이는 공연


‘벤트’는 미국 극작가 마틴 셔먼의 1979년 작품이다. 1933년 나치친위대(SS)가 세운 독일 최초의 강제수용소 다카우 수용소에 수감된 동성애자 이야기를 다룬 퀴어연극이다. 1979년 영국 런던 로얄코트극장 초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현재까지 40개 이상 국가에서 상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1997년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퀴어연극의 고전이다. 제목인 ‘벤트(BENT)’는 게이를 뜻하는 속어이다. 한국 초연은 2013년 극단 ETS 김혜리 연출에 의해서다. 2013년 초연 이후 2014·2015년 재공연을 거쳐 2018년 네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수십년을 거치며 검증된 공연답게 작품의 힘만으로 공연 시간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무대는 단순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1막은 1934년 베를린 게이클럽을 전전하며 요란한 삶을 사는 맥스와 루디의 아파트, 2막은 다카우 수용소에서 만난 맥스와 홀스트의 이야기다. 2막에서 무대 앞쪽에 철조망이 쳐지고 관객들은 철조망 사이로 공연을 바라본다. 마약매매상 맥스는 폭력을 동반한 거친 하룻밤을 즐기고, 지난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밤은 1934년 6월 30일, 과격해진 나치돌격대(SA)에 대한 나치친위대(SS)의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진 밤이다. 나치돌격대의 고위간부이자 게이인 에른스트 룀도 살해되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강제수용이 이루어진다. 수용자들은 노란별을 가슴에 단 유대인, 분홍색 삼각형을 단 동성애자로 분류된다. 동성애자는 가장 낮은 등급의 ‘혐오대상’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공연은 소품을 최소화하고, 철조망 하나만으로 공간을 표현한다. 김혜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일인극 ‘페이스’, 부천 여고생 살인사건을 다룬 ‘나이팅게일의 소리’, 세월호에 관한 다큐멘터리극 ‘사랑해 4.16 그 후’ 등 사회문제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왔다. 일인극과 소수의 배우 중심 극으로, 무대 미학보다는 배우의 말과 배우가 돋보이는 공연을 만들어왔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다. 맥스와 루디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배우들의 얼굴은 새롭지만 안정적인 발성과 호흡으로 신뢰감이 강한 장면들을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부정하며 가짜 유대인 행세를 하던 맥스(김승기 분)는 홀스트(김정훈 분)의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며 노란별의 옷을 벗고 분홍색 삼각형 옷을 입고 전기 철조망으로 다가서서 오랫동안 관객들을 바라본다.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비로소 인정하고, 마지막에 진짜 선택을 하는 고전적 드라마지만 여전히 울림이 큰 공연이다.
 


‘중립국’, 시각적인 무대와 강한 연출 언어


‘중립국’은 1977년 초연된 이근삼 원작 ‘아벨만의 재판’을 각색한 공연이다. 이근삼의 소개에 의하면, 극단 가교 이승규 연출에 의해 “희극적으로 연출해 성공”한 작품이다. 이근삼은 정치풍자와 희극에 강한 작가이다. 원작의 제목 ‘아벨만의 재판’이 아벨만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제목이라면, 문새미가 각색한 버전의 ‘중립국’이라는 제목은 적군의 침략 앞에서도 무력하고, ‘해방군’의 이름으로 들어온 제3국의 원조물자 앞에서도 무력한 중립국의 전체 상황을 풍자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객석 양쪽에 관객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관객들이 아벨만의 재판을 지켜보는 형태다. 무대 배경은 어느 중립국의 8구역, 전쟁 피해가 심한 곳 중 하나다. 특이한 것은 무대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인 듯 폐쇄된 공간에, 배우들의 등·퇴장도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이루어진다. 배우들은 개구멍 같은 구멍으로 기어서 등장한다. 극 중반 아벨만이 회유를 받아 떠나는 장면에선 반대쪽 벽의 좁은 틈새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독특한 장면을 연출했다. 중립국의 주제에 맞춰 마을 유지들의 옷 또한 모두 회색이다. 아벨만 또한 같은 회색이지만 헐렁한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강조했다.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아벨만은 계속 오줌이 마렵다고 바지를 움켜쥐고 있다. 희극적 재치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군 사령부의 요구에 따라 자치위원회가 소집되고, 형식적인 전범재판을 위해 아무 죄 없는 아벨만이 소환되지만 아벨만은 진짜 희생자가 된다. 문새미는 원작에 등장하는 해방군 사령부의 연락관을 생략하고 공문서로 날아 들어오는 서류로 대체하고, 과거 원한과 복수의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등장인물들도 대폭 정리해서 5명의 재판관과 아벨만의 대립구도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아벨만 역의 이기돈, 선생 역의 김은석, 청년대표 역의 이기현 등 안정적인 캐스팅과 탄탄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아벨만에게만 집중된 공연은 비극적 개인의 결말로 끝나고,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대해 의존적이고 개인의 사리사욕만 채우며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는 무감각했던 비루한 우리의 모습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 충분히 살아나기에는 원작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어 아쉬웠다. 공연시간도 70분으로 짧다. 시각적인 명쾌함에 비해 극 후반으로 가면서 무게감이 제대로 실리지 못한다. 카인과 아벨의 대립구도를 강조한 보편성과 비극성은 선명해졌지만 풍자의 거리감과 웃음은 사라졌다. 문새미 연출은 ‘리처드 3세’와 ‘중립국’에서처럼 고전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전의 과감한 해석뿐만 아니라 정교함도 더 요구된다.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ETS·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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