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과거 소환해 오늘을 읽고 내일에 말 건다 / 이창현(언론정보학부) 교수

두 면의 바다


‘호모 포토그라피쿠스’의 시대다. 우리는 일상 모든 것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어디까지 진실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가상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시뮐라시옹의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보드리야르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이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에서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대는 ‘실재는 없이 실재적인 것의 모형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즉 과잉 현실’이 지배한다고 했다.


시뮐라시옹의 시대에 다큐멘터리 사진은 더욱 의미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사실과 그 속의 아우라를 담고 있기에 세월이 흘러 이 사진들은 촬영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기억을 소환하는 미디어로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다른 장르가 갖지 못한 생명력을 갖는다. 오래된 진공관 앰프로 엘피판을 듣는 맛이라고나 할까? 불편함과 잡음을 동반하지만 그 소리에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아우라가 담겨 있다. 그래서 개인의 오래된 기억을 소환한다.


박진영의 사진집 <두 면의 바다>는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가 촬영한 1990년대 대학가 모습을 통해 나는 나의 대학시절을 되돌아본다. 그가 바라본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나는 나의 기억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읽는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영화 <1987>이 다양하게 소환했던 6월 민주항쟁의 기억을 이미 오래전에 박진영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소환했던 것이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독자에게는 가장 주관적인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그 소환된 기억이 오늘의 시대정신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돕는 중요한 미디어가 된다.


박진영의 사진 기록은 한국의 현대사를 잘 담아냈다. 노동자의 날에 모인 노동자들, 시위진압을 위해 동원된 전경들, 경마장의 시민들 사진에서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파노라마 사진으로 가급적이면 폭넓은 맥락을 담으려 했던 사진작가의 의도도 돋보인다. 이것은 단순한 일상적 풍경을 넘어 사회적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한 대기업 사장의 자살 현장 사진은 텔레비전 뉴스를 취재하는 현장 기자의 모습도 담겨 있어 현장감을 배가한다. 텔레비전 뉴스의 현장감 이상의 역동성을 지닌 다큐멘터리 사진의 탄생이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영에게 3·11 대지진의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모습은 운명적 오브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재난 현장에서 쓰나미에 휩쓸렸던 건물과 그 현장에서 수거된 생활용품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텅 빈 도시에서 주인 잃은 아이의 자전거, 그리고 오토바이, 그리고 누군가의 사진액자와 야구 글러브 등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쓰여 있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한 마을 모습을 포착한다. 거대한 쓰나미로 한순간에 사라진, 그리고 방사능을 피해 이사를 간, 그래서 사람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풍경’을 다루었던 그는 일본의 후쿠시마 현장에서는 사람의 부존재를 담아 ‘문명의 풍경’을 다룬다. 그가 담은 유일한 인물은 부존재를 확증하기 위해 사용된다. 후쿠시마에서 발견한 아마추어 사진가 가네코 마리의 앨범 사진이 그것이다. 센다이현 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의 앨범을 박진영 작가가 발굴한 것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 속에서 이들을 잇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사라져버린 후쿠시마, 그래서 그는 일본의 현실에서 인간의 미래에 말을 거는 것이다.


박진영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나는 젊은 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다시 후쿠시마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의 사진에서 나는 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을 되돌아보고, 그에 기반하여 오늘의 현실을 읽어낸다. 후쿠시마의 사진은 반핵운동단체와 함께 후쿠시마를 방문해서 핵발전소 근처까지 접근했을 때 울렸던 방사능 위험 경고음과 함께 공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사진가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호흡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그렇다.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지고, 2011년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의 모습을 통해 나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의 미래를 떠올린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는 특정한 시대의 기록이지만, 다양한 맥락에서 개인들의 기억을 소환하고, 시대정신 속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진영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늘 긴장감을 준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38784.html#csidx56c8d054b2620cab2850ef6a63039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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