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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총선 D-30’국민 우롱하는 비례여당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도둑으로 모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정당 참여 결정이 꼭 이와 같다. 4·15 총선이 30일 앞으로(D-30) 다가오면서 보수세력 단일화로 창당된 미래통합당은 이미 공언(公言)한 대로 지역구만 공천하고 미래한국당이라는 자매 정당을 통해 비례 후보를 공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 의석을 도둑질한다고 강력히 비난했고, 검찰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까지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래한국당이 비례의석 중 20석 이상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자 그토록 비난했던 비례 정당 창당을 독자적으로 시도하면 받게 될 비난을 피하려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비례 정당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정의당과 민생당 등 소수 정당을 초대하고 나섰다. 의석을 도둑질하는 미래통합당을 응징하기 위해서, 통합당이 총선 결과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추진한다는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한 일을 하긴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탄핵을 겁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것이 민주당의 ‘적반하장’ 현상 관련 경위이다.

선거법은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법이다. 그래서 역대 국회에서는 선거법 개정만큼은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가 합의를 통해 개정하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에, 선거법은 반드시 여야의 합의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합당이 만일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찬성했다면 자매 정당을 통한 비례 의석 확보 노력은 공당으로서 해서는 안 될 꼼수이며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의 선거법은 민주당과 소수정당이 이른바 ‘4+1’ 합의체를 구성해 막무가내로 통과시킨 법이고, 그 과정에서 비례 자매 정당 출현 가능성을 충분히 경고했었다. 그런데도 여당인 민주당은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겠다면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래 놓고 막상 비례 정당이 현실화하니까 스스로 범죄라며 고발까지 한 비례 정당에 참여하면서 ‘범죄’가 아니라 ‘응징’이라고 우긴다.

어떤 선거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관한 정답은 없다. 선거제도는 역사와 정치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지역구의 사표(死票)를 줄인다고 하지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득표를 정당지지율로 간주한다. 지역구 후보의 사표가 왜 정당지지율을 통해 되살아나야 하는지에 논리적 합리성도 문제다. 반면, 도·농 간의 인구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오히려 표의 등가성 제고가 더욱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반드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논리와 다르게, 미국과 영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은 왜 양당제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도 민의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 소수 정당이 많아지면 오히려 이들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함으로써 민의가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정치 개혁으로 포장하는 것에도 쉽게 동의할 수가 없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목적인 정당들이 바뀐 선거 제도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걸 나무라고 싶진 않다. 상대는 예고한 일을 하는데, 자신은 도둑질이라고 비난하면서 상대는 도둑이고 나는 경찰이라고 우기는 게 기가 막힐 뿐이다.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31601073111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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