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세대갈등, 언론도 눈 감나 / 손영준 (언론정보) 교수

졸업반 학생들이 연구실로 인사를 왔다. 취직한 학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었지만,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생활하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에는 본인들은 지금 잘 느끼지 못하는 무거운 짐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 늦게 태어난 후배들에게 떠안기는 일종의 세대간 책임 전가이다.

굳이 따져보면, 우리 사회에서 세대간 갈등은 1970, 80년대만 해도 주로 규범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 중심이었다. 기성세대와 후속세대 간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가 충돌했으며, 현실론과 이상론이 부딪쳤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주화 진전 이후 세대갈등은 핵심적 사회 이슈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꿩 잡는 게 매'인 신자유주의 앞에서 생물학적 나이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외환위기는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현실론을 강화시켰다. 지금의 20대가 이념적으로 보수화된 것은 그 결과이다. 기성세대와 후속세대라는 세대 구분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전(前)근대적 기준인가? 최근 몇 가지 현상은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를 다시금 세대 갈등의 관점에서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연금이 가장 좋은 예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이 알려지자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국공립학교 교사들이 크게 늘고 있다. 당사자들은 수령액이 줄어들기 전에 사표를 내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은 안 그래도 내년도 적자분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에서 충당해야 할 돈이다.

사학, 군인 등 특수직 연금 적자도 공적자금으로 지탱해온지 오래됐다. 국민연금도 하루 800억 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각종 연금 부담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연금 문제의 심각성은 사실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뤘다. 선배세대가 풀지 못한 연금 문제는 결국 후속세대가 부담을 져야 해결된다. 청년실업 시대를 살고 있는 올해 대학 졸업반도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 그래도 그들은 여러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할 운명이다.

부동산 문제는 더 심각한 세대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연소득 4,000만원인 근로자가 서울의 웬만한 30평형대 아파트를 사려면 평균 11년이 걸린다.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았을 때 그 정도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20대 대졸자가 자력으로 집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년 2월 대졸자 가운데 연봉 3,000만원이 넘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부동산으로 과도한 불로소득을 올리는 선배세대는 후속세대의 미래소득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발등의 불은 20대에게 당장 올 겨울 일자리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주유소에서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건강해진 50, 60대들과 주유소 '알바' 자리를 놓고 처절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연금과 부동산 문제 등은 '좋은 게 좋은'식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문제다. 미봉책으로 떠넘기기 쉬운 일종의 폭탄 돌리기다. 폭탄은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이런 추세라면 그 폭탄은 후속세대에서 터질 것이다. 지금 조금 먼저 태어난 사람은 뒷사람에게 짐과 부담을 떠넘기는 집단적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이런 도덕적 해이에 언론도 편승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20대 초반과 그 이하 세대는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 상품과 광고를 소비할 구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이다.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는 관점은 대단히 인색하다. 후속세대에게 불공정한 '게임'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세대간 문제는 단순한 생물학적인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다룰 문제다. 지역갈등이나 보혁갈등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 경제적 갈등이 될 것이다. 조금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후속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 20대는 변해가고 있다. 수업시간에 저출산 문제를 토의하다가, 학생들에게 불쑥 물어본 적이 있다. "결혼해서 몇 명의 아이를 가질 것이냐?"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단호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는 가지지 않을 겁니다." 다른 학생에게 물어봤다.

같은 대답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선배들이 얼굴 덜 붉히며 어물쩍하는 사이, 20대는 벌써 해법을 찾아버렸다. 선배세대가 강요한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선배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라. 후배들에게 짐 떠넘기지 말라고!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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