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시평] `무엇을 원하세요` / 조중빈 (정외) 교수

수십 년간을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 보고 "낫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어 본다면 듣는 사람 마음이 어떨까?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 평생 소원이 병상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는 것일 텐데 낫고 싶으냐고? 그런데 이런 사건이 기독교 '성경'에 기록돼 있다.

필자도 종종 그렇게 물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정치학을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온다. 단골로 나오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북한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북한이 '핵실험' 했을 때와 같이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 질문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혹시 모르니까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겠기에 전문가들의 분석을 검토하다 보면 뭔가 허전하다.

예컨대 국내외 전문가들이 북한 체제 변화에 대해 내놓는 시나리오는 대충 이렇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하면 어떻게 되나?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서서히 붕괴하면 어떻게 되나? 지금으로서는 6자회담 유(類)의 해법이 눈에 들어오는데 결국은 북한이 국제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럼 통일은 어떻게 되나? 통일은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통일을 원하지 않는 한 통일은 안 된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그러니 "북한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질문하면 "북한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내년 대선에 무엇을 원하세요?"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혹시 '북한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내년 대선'을 내 문제가 아니라고 발뺌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자기 문제에서 자기를 쏙 빼고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하다. 법칙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어도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대통령 선거 1년 전에 선두 주자는 본선에서 필패한다' '대선은 마지막 한두 달이 결정한다' 등의 분석에 마음이 흔들리고, '지금 물망에 오른 사람 중에 대통령이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해괴한 점괘가 나오면 마음을 그냥 놓아버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일을 저질렀다.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거나 찍지 않았거나 공동으로 일을 냈다. 그런데 지금도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법칙 같지도 않은 법칙을 핑계 삼아 자기의 속내를 감추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부터 잘 해봐야 소용없고, 선거 막판을 쓸어버리면 된다는 법칙, 그 법칙을 철석같이 믿는 자의 오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이다. 이 감정과 갈등의 특징은 내가 가진 것은 특별해 보이고 남이 가진 것은 추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 감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남의 이념은 '꼴통'이 된다. 내 것은 절대 버릴 수 없고, 남의 것은 반드시 버려야 되는 것이다. 서로 다 내려놓을 수 없으니 서로 서로는 각각 '고정표'가 되고, 마지막에 몇 %만 흔들면 되니까 '막판 법칙'이 성립된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 '고정표'들이 망신과 수모를 당하다 못해 '고난의 행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0%도 안 되는 국정 지지율을 가지고도 나머지 90%나 되는 절대다수를 향해 날리는 폭탄 세례는 지역과 이념에 볼모 잡힌 '고정표'가 대통령에게 다시 볼모 잡힌 현실을 증거해 준다.

그렇게 믿었던 지역과 이념은 허구가 되고 노무현 대통령은 실체가 됐다. 지역감정이 얼마나 허망하고 이념갈등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내년 대선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가 아니다. "내년 대선에 무엇을 원하세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 또 원하세요?"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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