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북핵 기상도 `대체로 흐림`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2007년 들어 북한 핵 문제를 올해 해결하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1980년대 김일성대학에서 유학한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올해 안에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정치.경제적 논리에 따르면 평양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도 이유도 없다.

북한은 핵 개발과 관련,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해 왔다. 하나는 핵무기를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침략을 차단하는 군사적 억지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6자회담 등에서 외국으로부터 더 많은 정치.경제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다.

북한이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지만 국내외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이들 목표의 상대적 중요성도 변화해 왔다. 90년대 말까지는 협상카드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당시는 경제사정이 절망적인 데다 대규모 기근과 국제적 고립에 직면해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원조가 절실했다. 결국 북한은 94년 10월 핵 동결을 대가로 경제적 원조를 받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환경이 달라졌다. 한국과 중국은 전략적 목표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조건 없이 나오는 이 원조를 북한 측은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체제 유지를 최고 목표로 여기는 북한 정권은 이러한 원조를 군부와 당 간부 등 핵심 계층에 배급, 이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 이는 합리적인 정책이다.

또 한국과 중국의 대북 지원 규모가 커져 북한은 이제 90년대처럼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투명성과 배급에 대한 감시를 요구하는 서방권 구호 기구들의 원조는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어 한국과 중국의 원조보다 정치적인 가치가 떨어진다. 서방 원조의 중요성이 감소한 만큼 핵무기를 협상카드로 이용할 필요성도 자연 줄어들었다.

반대로 2000년대 들어와 군사적 억지력으로서 핵무기의 가치는 더 커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보여주듯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외 정책에서 군사 수단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선제 공격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북한 지도부가 이라크 전쟁과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은 체제를 유지하려면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후세인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면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고 지금도 자신의 호화로운 궁전에서 코냑을 즐기며 국내 반대세력을 학살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신년 공동 사설에서 "우리가 핵 억제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패의 국력을 갈망하여 온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실현한다"고 주장했다. 동북아에서 핵무기 경쟁을 초래할 수 있는 핵 개발이 '인민의 세기적 숙망'인지는 모르겠지만 체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북한으로서는 합리적 전략인 셈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우파가 바라는 것과 달리 대북 경제 원조와 제재는 평양 지도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렛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동북아의 국제 관계를 잘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미국.중국.일본은 모두 북한의 핵무장을 바라지 않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평양은 이 같은 동북아의 갈등-경쟁 구조를 잘 활용하고 있다. 60~70년대 중.소분쟁 때부터 후원 국가들의 갈등을 관리할 줄 알았던 북한의 외교술은 이러한 각국의 입장을 적절히 활용, 경제 제재가 효과를 내지 못하도록 시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올해 6자회담은 그럭저럭 굴러가겠지만 눈에 띌 만한 돌파구나 핵 문제 해법은 내놓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한국 속담대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자. 2007년 북핵 해결 전망은 '대체로 흐림'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7.01.07 20:34 입력 / 2007.01.07 21: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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