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한국경제-시론] 올리브나무는 두번 털지 않는 법

골목상권 활력잃으면 모두 손해, 자유경쟁 원칙ㆍ공익 조화 찾아야

"네가 네 밭에서 추수할 때 곡식 한 단을 밭에 놓고 왔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올리브 나무 열매를 턴 뒤엔 두 번 털기 위해 가지 말며,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두라.포도를 거둘 때에도 다시 가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남은 것들을 그냥 두라."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한 말이다. 물론 성서는 이를 단순한 권고가 아닌 그들의 신 여호와의 명령이자,반드시 지켜야 할 법으로 말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이 말의 뜻을 곰곰이 되새김질해보면 여기에 내포돼 있는 이 시대의 경제생태계를 향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정당한 몫을 부정하는 기계적 평등론의 낡은 좌파적 이념은 없다. 각자의 몫을 인정하지만,그 몫에 더 보태거나 빼도 어차피 한계효용을 이미 넘어선,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생계의 최후적 담보가 될 수 있는 그것을 억지로 다시 가져오지는 말라는 것이다.

골목상권에 진출하려는 유통기업의 전략이 골목상권 영세상인들의 생존권 주장과 충돌하면서 국회의원들 중 일부는 유통망에 대한 일정한 제한을 추진하고 있고,최근에는 중소기업청이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이 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옥련점의 개장을 막기 위해 낸 사업조정신청을 받아들여 일시정지 권고안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유통망을 넓히려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건 대표적인 규제이며,또한 유통질서의 현대화를 통한 비용절감,경쟁을 통한 소비자보호의 편익 증대가 논리적 근거없는 감성적 생존권 주장에 막힌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경쟁법을 연구하는 필자도 나름대로 스스로를 시장경제주의자라고 생각하며 불필요한 정부규제의 혁파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유경쟁이 시장경제에서 차지하는 원리는 많은 원리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와 상충되는 다른 공익과 정책적 목표들이 있는 경우에도 항상 지고지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유경쟁은 어떻게 보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근래 우리와 FTA를 타결한 유럽연합(EU)은 경제통합의 중심에 자유경쟁의 원칙을 확고히 두고 있지만 이를 관장하는 집행위원회 안에는 경쟁이사국 외에 여타의 정책적 목적을 가진 이사국들이 있어 최종적인 경쟁정책은 다른 공익들과의 충분한 사전조정을 통해 나오고 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경영자의 철학,도덕과 윤리를 강조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경제란 단기적으론 각자의 이기심에 근거한 균형에서 유지되고 어느 정도 발전되지만,장기적으론 '떨어진 이삭' 정도는 '고아와 과부,객'에게 남겨주는 인성이 뒷받침돼야 장기적 공존공영을 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지적은 원론적이면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연일 쏟아지는 폭우에 산사태의 재앙을 입는 곳의 공통점은 큰 나무들은 있어도 그 아래 지표면에 가까운 관목들과 잡초들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 생태계라고 해서 자연의 생태계와 다를 바 없다. 떨어진 이삭을 가지려는 시도들은 일시적인 효율성과 수익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바닥경제의 활력을 죽여 경제 전체에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가 공동체 위기로 이어지는 시점에서는 '인성경영'이 절실하다. 공동체 전체의 파이도 중요하다는 거시적 안목,그리고 떨어진 이삭 정도는 그걸로 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을 위해 다시 주우러 가지 않는 정도의 인심이 뒷받침되는 경영 말이다.

이호선 <국민대 교수ㆍ법학>

 

원문보기: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72761151

이전글 [한국일보-삶과 문화]문화의 후원자/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다음글 [중앙일보-시론]우리 사회 통합의 길은 없는가/조중빈(정치외교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