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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삶과 문화]문화의 후원자/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그의 아내 카를라 부르니를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메디치에 빗대어 카를라 메디치라 불렀다. 아마도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점에서, 또한 세련미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메디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식기와 요리사, 가정교사, 심지어 조향사까지 데리고 와서 요리 예술 향수 등 프랑스 문화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요리사는 당시 손으로 음식을 먹던 프랑스의 음식 문화를 현재 최고의 요리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만든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조향사는 파리에 최초의 향수가게를 열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위해 고안된 하이힐은 파리의 여인들에게 대유행을 일으켰으며, 프랑스인들은 그녀의 발레 가정교사를 통해 처음 발레를 접하게 되었다. 후에 루이 14세, 태양왕은 발레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 오늘날 모든 발레 용어를 프랑스어로 하게끔 만들었으니 카트린 메디치는 결혼선물로 문화를 갖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귀족 출신도 아닌 그녀가 최고급 문화의 전수자가 된 것은 바로 그녀가 르네상스 시대를 꽃 피우게 한 메디치 가문의 딸이기 때문이다. 상업으로 성공한 메디치 가문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를 장악함으로써 상인이라는 다소 미천했던 신분에도 불구하고 교황을 비롯한 종교인 예술가 정치인까지 배출하며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탁월한 안목으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대규모 후원을 하여 거대 유산을 후대에 남겨준 메디치 일가는 오늘날의 대기업 문화 마케팅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음악계에서는 4대에 걸쳐 하이든을 후원한 에스테르하지 후작 집안을 최대 후원자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후작의 열성에 매주 새로운 곡을 작곡해야 하는 하이든은 졸면서 작곡을 하기도 했고, 휴가를 받고 싶어서 힘들어 하는 단원들을 위해 재치 있게 '고별 교향곡'을 작곡하는 간접적 방법으로 후작에게서 휴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든을 믿는 후작의 적극적 후원 아래 그는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악단을 갖고 있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하이든.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로 만든 일등 공신은 바로 30년간 그와 함께 한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다. 사실 하이든을 후원한 덕에 에스테르하지도 이름을 음악 역사에 영원히 남겼으니 이 또한 서로 '윈-윈' 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부유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 탓에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후원이 거의 없던 시절, 우리나라에도 에스테르하지와 같은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고(故) 박성용 회장이다. 일찍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금호사중주단을 만들고 유명 음악인들에게 연주 여행을 위한 비행기 표를 제공하는 등 다방면에서 음악인들을 지원해주었다.

특히 영재 발굴에 앞장서서 고가의 현악기를 살 수 없는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는 값 비싼 명기를 대여해 주었다. 지금도 자비를 들이지 않고 독주회를 열 기회를 제공하는 영재 오디션은 음악도에게는 꼭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음악인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아쉬워한 것은 당연하다.

예술에 대한 안목과 사랑, 아낌없는 후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삶은 정말 멋지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도 없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찬, 직접 표를 사서 공연을 관람하는 당신도 그들만큼 멋진 문화의 후원자이니까.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ㆍ국민대 교수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8/h20090801024429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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