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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경제협력(OECD)에 속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정부의 전문성이나 기업 효율성 등은 평균 수준에서 별로 뒤지지 않으나
법치 수준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세계은행이 2009년 6월에 발표한 각국 통치지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법치 수준은 100점
만점에 74점으로, 다른 OECD 국가 평균이 90점을 웃도는 데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법제연구원의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실제로 우리 국민도 ‘우리 사회에서 법이
어느 정도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약 63%가 ‘잘 또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 편이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법질서에 대한 준수의식이 서구보다 낮은 원인에 관해서는 흔히 법보다는 도덕과 예(禮)를 앞세우는
유교문화적 전통과, 일제의 식민지배나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키워진 일종의 반(反)실정법적 풍조를 들고 있다. 그러니까 다수 국민의
의식 속에는 법이 국민대표가 모여 만든 자발적인 약속이니까 지킨다기보다 그 내용이나 집행이 도덕적으로 수긍되고, 권력자의 사적 욕망이 배제된
공평한 것으로 믿기 때문에 일단 지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올 들어 검찰이
8개월이나 지난 조사 끝에 범죄혐의 없다는 처분을 내린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사건 수사 결과 발표나, 국회는 임기개시 후 7일에 최초의
개회를 한다는 국회법의 명백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의 정략적 다툼 끝에 1개월이나 지나서 겨우 문을 연 우리 국회를 보면서 국민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가족도,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하는 국회도 법을
우회하거나 위반하는데, 힘없는 보통 국민이 어떻게 모든 법을 고지식하게 다 지킬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한 경제단체의 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법질서를 가장 안 지키는 기관·단체에 대한 물음에서 국회와 정치권이 44%,
검찰·경찰·사법부가 13%로 나타났다는 보도나, 지난해 한 언론기관이 우리 사회의 공존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을 물었을 때 조사 대상자의
41%가 지도층의 부도덕을 꼽고, 59%가 현재 우리나라에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응답했다는 내용도 결국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각계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고한 ‘2020 한국사회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미래연구 보고서’ 중에도 지도층의 준법 수준이 평균
5점에 미달하는 4.83으로 나타난 사실도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란 원래 국가권력의 발동을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제정한 법에 맡김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자의적(恣意的)인 권력으로부터 지키고자 시작된 것인데, 그 법을 제정하는 국회나 법 집행을
책임진 행정부의 최고책임자가 법을 지키지 않거나 이를 국민 상식에 어긋나게 피해간다는 것은 사실 법치주의의 근본을 해치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서도 국민에게 법의 준수를 요구한다면 그 요구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급 인사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단순히 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보편적 상식과 도덕관념에 맞는’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을 보여주기를 기대해온 측면이 매우 강하다고 봐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사회에서 법치의식이 없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며, 그 의식과 몸가짐이 도덕적으로도 떳떳해야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지도자는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오래된 명제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는 자는 없다(Nemo est supra leges)’는 이미
문명국가의 상식화된 법 격언을 솔선해 익히고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작금의 세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되뇌게 된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71901033037191002
출처 : 문화일보 기사보도 2012년 0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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