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화일보]차기 대통령의 조건/정성진 전 국민대 총장(7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끌던 정부에서 1949년 제2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던 김익진은 다음해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강임(降任)됐다. 4·19 학생의거 후 민주당 정부는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으로 가 있던 이태희를 새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또 5·16 직후에는 군법무관 출신 인사가 두 차례 검찰총장에 임명됐으며, 그 중 한 분은 약 8년 간 재임하며 검찰 행정의 쇄신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를 통해 검찰 조직을 직·간접으로 통제해 보려던 행정부 수반의 의도가 정부 수립 후부터 꽤 오랫동안 이어내려오던 폐습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금도 정치인이 연관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소나마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검찰에서 수사할 경우, 번번이 국회와 정치권에서 검찰권 행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논란하는 것은 결국 과거의 그런 떳떳지 못한 전례 또는 역사와 무관하지가 않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에 대한 임명·승진·보임의 권한을 대통령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수사와 공소제기를 담당하며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검사들에게 현실적인 울타리이자 보이지 않는 감시탑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법치주의의 파수꾼이자 감시자이지, 특정한 정부를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물론 법에 정해진 업무 수행과 관련해 대통령이나 입법부 등으로부터 지시를 받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국의 검찰은 광복 후 정치적 혼란기에 좌익 척결에 진력해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고, 1980년대 이후 마약사범이나 조직폭력배의 소탕에도 노력해 그 성과를 국내외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은 바 있다. 또 정치적 평가가 어떻든 전직 대통령 두 사람과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아들들을 구속 기소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바로 지난 정부에서는 대선자금 수사를 당당히 함으로써 범국민적 호응을 받기도 했다.

물론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런 정도의 업적만으로 헌정질서의 기본이 흐트러졌던 1970년대에 긴급조치가 남용되고 일부 인권 침해가 묵인되던 과오로부터 그 법 집행의 일선에 있던 검찰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검찰이 나름대로 법치주의의 감시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인사권에 의한 제약 등 현실적 요인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데 원천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이제는 제도적으로라도 그러한 요인들을 제거해 검찰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국민이 원하는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된다. 대통령 후보들이 말하는 공직부패 수사를 위한 특별검찰청(공수처)의 설치나 대통령 주변을 감시할 특별감찰관제의 검토와 같은 구상도 그러한 의도와 무관하지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이라면 예컨대,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앞서 검찰을 포함한 법조·시민·학계 대표 등으로 구성된 광범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검사의 승진 등 인사도 검찰 내부의 평가에 대폭 위임해 대통령의 임명권은 그 추천이나 평가 결과에 구속되는 형식적인 것으로 운영하는 방향이 돼야만 그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일단은 보장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당연히 이른바 ‘검찰의 파쇼화’를 우려할 수 있으므로 검찰총장에 대한 소환이나 특별감찰관제도의 운용 등도 병행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권력이 아니고 권력이 돼서도 안된다. 검찰의 권력 남용이 우려된다면 그러한 우려를 야기하는 제도는 마땅히 고쳐가야만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검사의 직무는 누구에게서나 존중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번 야당의 원내대표가 자신에 대한 수사를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비난하다가 결국은 자진해 검찰에 출석한 것도 그나마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는 역설도 가능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1301073037191002

출처 : 문화일보 기사보도  2012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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