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넷이 낸 책 300권… 세상에 이만한 즐거움이 없다 / 지두환 (국사학과) 교수

천병희(75) 단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플라톤의 저작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를 번역 출간했다. 1972년 플라톤의 '국가'를 번역한 이후 40여년간 천 교수가 출간한 서양고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 70권이 넘는다.

'인문학의 위기'라지만 묵묵히 대작(大作)을 번역하고 저술하는 '대작 인문학자'들이 우리 학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국책(戰國策)' '정관정요(貞觀政要)' '설원(說苑)' 등 동양고전 130권을 번역한 임동석(65) 건국대 교수, 중국 사마광의 거대한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31권으로 완역하고 10여권 관련서를 낸 권중달(73) 중앙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모든 국왕의 친인척 계보를 정리해 '~대왕과 친인척' 시리즈 52권을 완간한 지두환(61) 국민대 교수 등이다. 이들이 바로 우리 인문학의 힘이다.

◇고통스러운 작업?… 즐거움을 느낀다

'대작 인문학자'가 이룬 업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일을 거듭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임 교수는 30여년간 매일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책상에 앉아 작업에 몰두했다. 천 교수는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인 지금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중노동'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했다. 천 교수는 "번역할 때 처음부터 안 경우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하다 보면 밝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은 "남이 보지 못하던 것을 내가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다"(권중달), "성취감의 빈도가 나를 만들었다. 신내린 무당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임동석), "사명감이 있으면 고통이 아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다"(지두환) 등 '학문하는 즐거움'을 피력했다.

◇대작 작업을 하게 한 힘, 스승과 어머니

천병희 교수는 "대학 2학년 때 플라톤의 '향연'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내가 평생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사 장익봉 선생이 그리스어 원전으로 강독한 수업을 들은 것이 지금의 내가 있게 했다"고 말했다. 대작 작업을 하게 한 힘은 스승이었다는 것이다.

지두환 교수는 "그동안 우리 학계는 일제에 의해 망했다는 이유로 조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간송미술관에서 최완수 선생에게 배우면서 '조선은 문화국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이 길로 들어선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권중달 교수는 "평생 한국의 문집 목록 분류 작업을 한 스승 윤남한 교수에게서 우직한 학문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임동석 교수는 어머니의 영향을 꼽았다. 임 교수는 "어머니는 가난한 집 며느리였지만 50~60개 '내방 가사'를 외우셨고, 내게 속담과 시조를 많이 가르쳐 주셨다"면서 "남들은 나를 소극적이라 하겠지만 욕심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게 더 적극적인 삶이란 걸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돈은 안돼…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에 기여할 것"

대작·다작이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천 교수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 5000부, 20여년간 1000부도 안 팔린 책이 많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인세가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말했다. 권중달 교수는 책을 내겠다는 곳이 없어 퇴직금으로 아예 출판사를 차려 출간했다. 지두환 교수는 "개인 돈 1억원을 들여 책을 냈다"면서 "각 권당 1000부씩 5만2000부를 찍었는데 아직 창고에 3만5000부가 쌓여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부심은 대단했다. 자신들의 작업이 향후 영화·드라마·게임 산업 등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콘텐츠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는 자긍심이다. 권 교수는 "자치통감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은 2만 건이 넘는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밥 먹고 살 사람이 앞으로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지 교수는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는 물론 조선이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국민 교육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당당했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07/20140207000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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