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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폭스바겐 美 근로자의 非노조 선택 / 유지수 총장

20세기 초에 미국 근로자의 복지를 가장 크게 향상시킨 회사는 포드였다. GM도 높은 임금을 주면서 자동차 근로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근로자들은 자동차회사 덕분에 안정된 직장과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번의 에너지 파동을 맞으면서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자 미국 자동차회사의 영광은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연비(燃比) 좋은 일본차의 공세에 밀려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보이던 자동차산업이 서서히 무너진 것이다.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던 디트로이트 시는 자동차회사와 함께 점차 몰락하는 도시가 돼 버렸다. 전미자동차노조(UAW)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무너지는 자동차산업의 와중에 UAW가 선택한 길은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었다. 파업 공세를 벌여 자동차회사 경영진의 무릎을 꿇리는 강공 전략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파업과 양보 없는 노조의 노선은 결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기반을 회복 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거세지는 외국 자동차에 맞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야 했지만, 미 자동차회사는 내부적으로 노조가 발목을 잡아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났으니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더욱이 미국에 진출하는 토요타, 닛산, BMW, 벤츠, 폭스바겐(VW)은 UAW가 강한 디트로이트 지역을 피해 자동차노조가 아직 결성돼 있지 않은 미국 남부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임금도 싸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UAW도 없는 지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니 남부의 공장들은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UAW도 남부에 위치한 외국계 자동차 공장 공략에 나섰다. 우선 노조 설립에 협조적인 폭스바겐의 테네시 채터누가 공장을 공략한 다음 이를 발판으로 다른 외국계 공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폭스바겐 테네시 공장의 1550여 근로자는 예상을 뒤엎고 ‘찬성 626, 반대 712’로 UAW 설립을 거부한 것이다. UAW는 남부에 첫발부터 헛디뎠다. 미 남부 근로자들은 UAW처럼 생산성 향상을 외면하고 경영진에 압박을 가해 임금을 올리려는 것은 시대착오임을 인식한 것이다. UAW가 남긴 디트로이트의 깊은 상처를 보면서 남부의 근로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UAW는 전성기 때 200만 명의 노조원을 자랑했으나 이제는 75%가 줄어든 39만 명 남짓하다. UAW는 근로자들이 외면하는 처량한 노조가 됐다.

1980년대에 UAW는 디트로이트 경영진과 노사협약을 하면서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협약서에 담았다. 협약서의 목차만 20쪽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 지부가 다시 협약서를 작성하면 문서는 한없이 늘어난다. 이 협약서의 내용은 모두 경영진의 움직임을 규제하는 것들이다. 경영진이 공장의 단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UAW는 철저히 경영진의 발목을 붙잡았다. ‘시장에서의 성공이 직장의 가장 좋은 방어벽’이라는 사실을 UAW는 무시한 것이다.

미국 폭스바겐에서 UAW의 실패는 남부 근로자들이 얼마나 현명한 판단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채터누가의 폭스바겐 근로자들은 1988년 폭스바겐이 펜실베이니아 공장을 폐쇄했던 사실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공장은 UAW가 조직돼 있었는데, 저품질과 지속되는 노사 갈등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남부 근로자들은 경쟁력 향상만이 자신들의 직장을 살리고 임금도 인상시킬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자를 떠난 노조는 결국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오는 25일 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 참가 여부를 묻는 투표를 18일 실시중인 현대차노조는 이번 채터누가 폭스바겐 근로자들의 ‘비(非)노조 선택’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21801033137191004

출처 : 문화일보 기사보도 20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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