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김병준의 대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 (행정정책학부) 교수

 

 

 

◇윤여준은?

윤여준은 어떤 사람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책사라 한다. 틀렸다. 틀려도 많이 틀렸다. 책사란 말 속에는 ‘누구’를 위해 봉사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봉사할 그 ‘누구’도 없다. 이회창도 안철수도 그리고 문재인도 그에게는 그의 뜻을 펴기 위한 ‘인적 수단’이지 봉사의 대상은 아니다. 권력이나 힘을 얻기 위한 통로는 더욱 아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윤여준은 이 시대를 고민하는 현자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너무 큰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한 확신이 큰 만큼 현실정치와 ‘인적 수단’에 큰 관심을 두고 있고, 그런 가운데 때로 패착을 두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패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이 시대 이 나라의 고민을 안고 있는 현자이다. 듣고 나눌 이야기가 많음은 물론이다. 그런 그를 <김병준의 대담> 첫 손님으로 모셨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가의 통치 역량과 그런 낮은 통치 역량 속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해 보기 위해서이다.

때마침 영화 <국제시장>이 장안의 화제다.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에 이어 <국제시장>의 흥행이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국가주의와 영웅주의 경향 속에 우리가 주의할 점은 또 없을까? 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통치 역량과 메시아주의: 영화 명량과 국제시장

윤: 당시 고생해서 나라 일으킨 사람들 눈물은 이해된다(국제시장). 나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그 뜻이 무엇이냐는 잘 새겨야 한다. 옛날 것 회상시키면서 국가주의적 관점과 성장 제일주의 관점을 심는 경향은 없는지 조심해야 한다.

김: 국민들이 어렵고 답답한 모양이다. 그러니 애국주의와 성장주의 이야기에 빠지고, 대단한 지도자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것 아니겠나.

윤: 그렇다. 메시아 기대심리다. 알렉산더 대왕이 큰 칼로 매듭을 일도양단하듯 해주길 기다리는 건데, 그 자체를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무장의 리더십을 현재 민주주의 사회의 리더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혼동하면 안 된다(명량). 또 과거에 대한 회상을 넘어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일체화하면 곤란하다(국제시장).

김: 2002년 대선 때 노사모를 비롯한 열광적 지지자들에 크게 감동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큰 걱정이 있었다. 이들이 노무현이라는 특정인이 세상을 확 바꿀 것이라 기대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대를 다 채워 줄 형편이 되지 못했고, 그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곧 등을 돌렸다. 노무현의 비극이자 우리 정치의 비극이었다.

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시절만 해도 권력자가 아니었다. 딱 권력자가 되어 현실을 다루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예전과 다르다. 많은 현실적 조건들이 대통령을 힘들게 한다.

김: 영화에 환호하는 관객들의 정서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오죽 어렵고, 오죽 국가와 정부가 엉망이면 메시아를 기다리고, 어려웠던 시절의 지도자를 이야기하겠나.

윤: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치공동체가 통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와 그 이후를 봐라. 행정권을 가진 대통령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도 통치 능력이 없다. 그런데 풀어야 할 문제나 모순은 얼마나 많나. 건국 이후 차곡차곡 쌓여 왔다. 이제 곧 곪아 터질 지경이다. 국외 정세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통치 능력 가지고 안팎의 도전과 위기를 대처한다? 굉장히 걱정된다.

 

◇통치 역량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일까?: 국가개조론과 개헌

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들어가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문제는 겹겹이 쌓여 있고 국가의 통치 역량은 바닥이었다. 정치권은 이를 높일 생각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나 부추기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래디컬(radical)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후 국가 개조를 한다고 했을 때 문제의식 자체는 정확하다고 봤다. 얼핏 1931년 일본국가 개조론, 즉 천황 중심 군국주의가 떠올라 불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까 그 내용이 너무 부분적이고 협소해 앞이 깜깜해지더라.

김: 같은 생각을 했다. 국가 개조면 국가, 시장, 공동체가 각기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큰 설명이 있고, 그 안에서 국가 부문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앞뒤 없이 바로 관피아 척결 정도가 나오니 할 말이 없어지더라.

윤: 세월호 참사로 죄 없는 아이들을 잃었다. 어찌 보면 참혹한 비극을 통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김: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참사 이전의 그 상태에 맴돌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은 한 술 더 떠 세월호 참사를 상대를 죽이는 무기로만 썼다. 문제만 터지면 이를 잡아 상대를 찌르기나 하는 우리 정치권의 고질병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국가 개조니 개혁이니 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안전문제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넘어가고 있다.

윤: 안산합동분향소에 혼자 갔었다. 오랫동안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미안했다. 너희들 무슨 죄가 있나. 이 나라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나라 뜯어고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 있으면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만큼 절실한 과제다.

김: 대통령의 국가개조론 수준이 낮다고 했는데, 국회와 여의도 정치권은 더 하다. 개헌논의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5년 단임이라 집권 후 바로 힘이 떨어지니 4년 중임을 할 수 있게 하자고 한다. 그러다 바로 대통령의 힘이 너무 강하니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자고 한다.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개헌논의에 따른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다 보니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이다.

윤: 분권형 대통령 논의도 그렇다. 안보는 대통령, 내정은 총리, 이런 식인데 요즘 국정이 그렇게 구분이 되나. 국방만이 안보 아니다. 경제 역시 안보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경제력이 있어야 군사력도 가질 수 있으니까.

김: 대통령의 권한이나 권력이 지나치다면 내치와 외치로 나눌 것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 즉 지방으로 권한을 넘기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생각 없이 개헌을 이야기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윤: 국가운영과 정치에 있어 제도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많은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행위자 문제이다. 행위자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과오를 얘기하지 않고 싶으니까 헌법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책임 전가다.

김: 미국 헌법에는 정당에 관한 조항도 없고, 대법원의 위헌심사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어느 나라보다 강한 보장을 받고, 대법원은 위헌심사라는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며 미국사회를 재단한다.

윤: 반면 우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어도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잘 봐야 한다. 그리고 개헌을 하더라도 논의의 초점이 권력구조에만 맞춰져서는 안 된다. 먼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처럼 경쟁 중심사회를 유지할지, 협동중심의 사회로 갈지 등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인들끼리 앉아 권력 나누기나 논의하는 개헌은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참여하는 개헌, 그래서 나라를 제대로 만들기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 누가 해야 하나?

김: 올해 대통령과 정부가 제대로 된 통치 역량을 회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쌓여 있고, 또 쌓여 간다. 그렇지 못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걱정이다.

윤: 박근혜 대통령만 해도 경제구조 개혁과 노동개혁 등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을 추진할 것 같다. 그러나 무슨 동력으로 이를 추진할 수 있을까. 아무리 훌륭한 개혁안이라도 이런 상태에서는 강한 저항에 죽도 밥도 안 될 가능성이 있다.

김: 청와대 경험으로 말하면 벌써 집권 4년 차 초쯤 되는 분위기다. 1년이 빠른 셈이다. 일종의 조로현상이다.

윤: 그래서 대통령과 정부는 일방적으로 안을 만들어서 던질 게 아니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 정부는 이것이 없어 문제다. 문제의식이나 동기는 좋다. 그러나 그렇게 일방적으로 던져 뭐가 되겠나.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 한다. 그리고 정책이 옳다면 밖에 있는 분들도 도와줘야 한다. 나라를 위한 일이다.

김: 기대하기 힘든 일일 것 같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면 그만큼 설명력 있는 비전이 있고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껏 없던 것이 갑자기 솟아나겠나. 정치권은 더 할 것 같다. 무슨 문제든 일어나기만 하면, 아니면 문제를 만들어서라도 서로 비난하며 반사이익을 취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 같다.

윤: 여야 공히 적대적 공생관계로 기득권 유지를 해 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 사이에 ‘이렇게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안철수 현상 때도 그렇게 보신 것 아니냐?

윤: 안철수 현상은 사막에서 목이 탄 사람이 보는 신기루였다. 안 의원은 그 신기루를 실체로 만들지 못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었는데 안 의원이 준비가 없어 이를 국가를 위해 쓰지 못했다. 참 애석하다.

김: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담론을 주도하게 할 수는 없다. 이들이 생성해 내는 이슈에 함몰되는 순간 우리의 미래는 없어지게 된다. 시민사회 곳곳에서 정말 필요한 혁신과 개혁을 위한 담론들이 생성되었으면 좋겠다.

윤: 국가적으로 엄청난 전환기이다. 국가운영 원리가 바뀌었어야 하는데 안 바뀌고 있다. 박정희 모델이 조금씩 변형되어 적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빨리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정치도 그렇다.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가 깊다. 그래서 국가 통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지 않고 참신성에 매력을 느껴 표를 찍는 경향이 있었다. 한 사람에 의존하겠다는 심리인데 이제 이런 것은 안 된다. 이런 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도 논의되어야 한다.

김: 그러한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영웅이 됐다가 어느 날 절벽 위에 서야 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친노’에 대해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적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새로운 운영 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또 어떠한 담론이 어느 정도로 시민사회에 퍼져 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 없이 편을 갈라 이기고 지고 하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게 아쉽다는 말이다.

윤: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가진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현실 경험을 가진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관료들은 앞만 보고 가다 방향을 잃을 수 있고, 보통의 학자들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인해 현재의 중요한 과제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경험을 가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담론을 생성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김: 누가 역할을 하건 제대로 된 담론이 생성되어 널리 공유되고, 국가가 통치 역량을 회복하고, 그래서 시민들이 지금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윤: 우리 사회에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의 경고가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시간:2014. 12. 26. 14:00-15:00

장소:매일신문사 서울지사

◆김병준은?

고령 출신 '논객' 노무현 정부 요직 親盧와는 거리 둬

1954년 경북 고령 출신이다. 대구상고와 영남대에서 학부를 마친 뒤 외국어대 석사,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민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가르치고 있다. 정치에도 몸담았던 학자로서 언론인 경력까지 갖고 있는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손꼽힌다. 1995년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을 맡은 이래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지방분권론자로 맹활약 중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한 해답은 지방분권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정책자문단장, 참여정부의 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등을 맡으면서 노무현정부의 정책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학계로 돌아온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계파인 친노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고서 노무현 정신의 올바른 계승을 위한 노력에도 열심이다.

 

원문보기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72&yy=2015#axzz3Nu3L06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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