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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對話지상주의를 경계한다 / 박휘락(정치대학원) 교수

박휘락 / 국민대 정치대학원 원장·국제정치학

 갑자기 남북 대화(對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에서 ‘1월 중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고, 이에 대해 어제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고,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가 따옴표로 표시한 전제조건인지, 회담인지 알 수 없음에도 정부에서는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대화의 불씨를 찾아서 살리고자 하는 정부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남북은 대화해야 한다. 70년이나 지난 분단의 역사를 청산해야 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도 절박하기 때문이다. 북한 동포의 참상을 더 이상 방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구걸하는 대화로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북한은 대화에 응해줬다는 것만으로 한국에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할 것이고, 오히려 변화를 중단할 것이다. 지금까지 기대만 부풀린 채 성과 없이 끝난 대화가 적지 않았다.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을 통한 일괄 타결도 쉽지 않다.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수 차례의 고위급회담을 했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못 면하고 있다. 오히려 남북적십자회담과 같은 실무 차원의 대화 채널만 무산시켰을 수도 있다.

‘바늘 허리에 매어 쓸 수 없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대화가 급해도 원칙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 핵무기의 고도화를 위한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이 대화에 집착할수록 북한의 선전선동책에 휘말리거나 남남갈등만 야기될 것이다.

북한이 핵 문제나 인권 문제 등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대화만으로는 관계 진전이 어렵다. 1983년 북한이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다수의 정부 요인을 폭살하고, 1987년 115명이 탑승했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시켰음에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국은 정상회담과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다. 그 당시 진전된 남북관계의 성과가 지속되고 있는가? 북한은 2007년 관광객 박왕자 씨 사살, 2010년 우리 군함 천안함 폭침 및 한국 영토인 연평도에 대한 포격을 자행하고도 아무런 사과나 조치가 없다. 언제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지 알 수 없고, 국제적인 인권 개선 요구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만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북한과의 대화·화해·협력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필요하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확대를 모색하고, ‘통일’보다 ‘민족공영(民族共榮)’을 강조함으로써 흡수 통일의 의혹은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거나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상호 주의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지정하는 조건대로 대화에 응하거나 5·24 조치 등을 일방적으로 해제하는 등의 원칙 없는 남북 대화는 곤란하다. 우리의 일방적인 양보는 막바지에 이른 북한의 개방화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10201073911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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