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교훈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몇 년 이내에 조용히 죽어 버리는 것은 대북경협의 기본 경향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경협 사업이 살아남는 조건은 그 회사가 자기 정부에서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도 이 사실을 배우고 있지만 1940~1950년대부터 대북 사업을 해온 러시아와 중국은 배운 지 수십 년 되었다.

이들 나라에서 북한과의 협력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중앙정부 지원이 중단되자 거의 다 조기에 죽어 버렸다. 그러나 예외가 없지는 않다. 북·러의 협력 역사에서 이러한 예외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북한 파견 노동자, 즉 북한 노동자 수입이다. 또 하나는 2008년에 시작한 북·러 합작법인인 라선콘트랜스(RasonConTrans)가 추진하고 있는 나진·하산 간 철도 연계, 항만 및 터미널 운영 프로젝트다.

라선콘트랜스는 54㎞의 철도 그리고 나진항 제3부두의 터미널을 경영하고 있다. 철도는 표준궤 겸용의 러시아식 광궤인데, 러시아 기관차와 열차는 그대로 북·러 국경의 하산역에서 부두터미널까지 다닐 수 있다. 원래 기본 화물을 컨테이너로 상정해서 `RasonConTrans` 회사의 이름에 있는 `Con`자는 `컨테이너`를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컨테이너보다 러시아 석탄을 운송하기 시작했다. 투자 구조를 보면 러시아 철도공사가 70%를, 북한 측이 30%를 부담했는데, 북한의 투자는 주로 토지, 부두 제공이므로 어느 정도 상징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는 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을 철도로 나진항까지 수송하고, 터미널에서 수송선을 통해 제3국으로 보내는 것이다. 2014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국도 참가했고, 원래 목적지는 한국 포항제철소와 화력발전소들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 시기인 2016년 한국 측은 철수했다.

극소수 전문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과 언론인은 한국 측이 철수한 이후 이 사업이 무너졌을 줄 알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최근 라선콘트랜스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나진에서 상주하는 러시아 직원 50여 명과 북한 직원 130여 명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대북 제재 등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돈을 벌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라선콘트랜스 사업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를 보면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업가들이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로 라선콘트랜스 사업은 순수한 경제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2008~2014년에 정부와 관계가 가까운 러시아 철도공사는 전략적인 고려 때문에 철도 연결 및 터미널 건설 등에 3억달러 정도를 투자했다. 그러나 철도와 터미널이 완공된 이후부터 러시아 정부는 라선콘트랜스를 후원하지 않았다. 러시아 측은 사용료가 비싸며 이미 포화 상태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대신에 나진을 통해서 적은 비용으로 석탄을 수출할 수 있다. 석탄을 수송하는 철도공사도 돈을 잘 번다. 북한 측은 여러 서비스와 자신 땅의 이용권을 제안함으로써 돈을 번다.

둘째로 북한과 협력하는 해외 파트너가 우려할 수밖에 없는 몰수 위협은 사업 구조 덕분에 별로 없다. 국제 신용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북한은 외국 투자가 크게 성공한다면 몰수하거나 협력 조건을 일방적으로 북한에 유리하게 수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북한 측은 약속을 위반해도 얻을 것이 없다. 북한이 이 사업의 자산을 몰수한다고 해도 러시아와의 지속적인 협력 없이는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라는 파트너를 대체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최근에 한국은 다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5·24 조치에 의해 한국 수송선은 나진항에 입항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 금지가 1년간 또는 일시적으로 중단된다면 남·북·러 3각 협력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 북한과 협력하는 첫 단계에서 정치적인 지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말하면 양측이 순수한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프로젝트만 생존·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출처: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28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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