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대선공약과 한정식-이상학(경제)교수 경제시평


2002년 10월 30일(수) - 국민일보 -


[경제시평―이상학] 대선공약과 한정식

정갈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더욱이 음식을 같이 나누는 상대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람일 때는 그 즐거움은 더할 것이다. 우리 고유의 음식인 한정식은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한정식당에서 줄지어 나오는 음식이나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차려진 음식을 보면 포만감을 갖기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경우도 있다. 나오는 음식을 다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고,그냥 두자니 아깝기도 하며,남겨진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제공될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정식당들이 각각 자신 있는 몇몇 요리를 중심으로 특화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식당에 갈 때마다 머리에 떠오른다. 그렇게 하면 가격과 비용의 거품이 많이 제거될 것이며 주방장들도 자신 있는 요리를 더욱 더 발전시켜서 가격도 싸지고 음식 맛도 더 좋아질 것 같다.

사실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은 것은 한정식당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 횟집들에도 해당한다. 어떤 횟집에서는 주메뉴인 회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곁가지 요리를 먹다 보니 정작 주메뉴인 회는 그대로 남긴 경험도 있다. 그 집에 다음에 다시 갔을 때는 회보다 먼저 나오는 음식을 남기고서야 주메뉴인 회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요즈음은 많은 한정식당이 반찬 가짓수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이고 주메뉴에 더욱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스러운 변화라고 생각된다.

최근 TV를 비롯한 언론매체에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자주 거론된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들과 공약에 대한 검증이 지난 어느 대통령 선거 때보다 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또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도 매우 높다.

각 대선 후보들이 수립하고 발표하는 공약의 종류도 다양하다. 부동산가격 안정,성장,고용창출,구조조정 등 풀어야 할 경제문제는 산적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대선 후보들과 참모진의 고민은 매우 클 것이다. 몇몇 공청회나 TV 토론회 등을 보면서 대선 후보들의 국정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식과 준비의 철저함에 놀라기도 하면서 과연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많은 정보를 흡수하느라고 오히려 중심이 흐트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사실 대통령이 모든 면에 통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그러한 것이 결코 바람직스럽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에게는 백과사전 식의 지식보다도 국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통괄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류 한정식당의 경영자가 반드시 모든 음식을 가장 잘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선 후보들의 경제공약 부문만 본다면 부분 부분은 타당성을 지닐지 몰라도 전체로는 조화되지 못하는 어색한 부분이 꽤 눈에 띈다. 이는 마치 한정식당의 상 위에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반찬이 끼어 있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아마 대선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 다른 공약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실은 실현 의지도 약한 구호성 공약을 끼워 넣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맛에 둔감한 손님에게 주방장이 음식의 질과 조화보다는 음식 종류와 양으로 적당히 승부하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각 후보들의 경제공약은 어느 정도 중복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지난 선거 때의 공약이 다시 등장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정도를 지나쳐 재탕 삼탕하는 공약들은 한정식 집에서 재활용하는 밑반찬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중복이 불가피하겠지만 조금은 식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음식과 마찬가지로 선거 공약도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곁가지 음식 때문에 주요 음식이 빛을 잃는 요리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지나치게 많은 공약을 준비하는 것은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아 강조점이 퇴색되고 노력이 분산될 것이다. 한편 실속없는 구호성 공약은 구색 맞추기 용으로 상에 놓여서 얼른 손이 가지 않는 반찬과 마찬가지다.

반찬 하나 하나에 정성이 느껴지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한정식처럼 경제공약도 하나 하나의 실현 가능성이 느껴지면서 서로 모순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국정을 책임지려는 후보들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깔끔하고 정성스러우면서 포인트가 살게 준비해야 하는 것은 음식,대선 공약뿐 아니라 세상사 모두에 해당할 것이다.

이상학 (국민대 교수·경제학)

이전글 “한국군이 한미연합사령관!”: 북핵 위협에도 열광만 하나? / 박휘락(정치대학원) 교수
다음글 백범학술대회 - 조동걸, 장석흥(국사) 발표 및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