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전문가 시각] 무엇을 위한 반미인가 / 홍성걸(행정)교수


2003. 1. 9. - 국민일보 -



주한 미군의 훈련 중 불행한 사고로 숨진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 시위가 반미운동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SOFA 개정이나 대등한 한·미 관계를 바라는 것은 그런 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외출외박 나온 미군 병사들을 폭행하거나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별다른 불안감을 갖지 않는 사람이 60%에 가까운 이삼십대 젊은이들이 반미 시위에는 적극적이다. 그들에게 반미운동을 걱정하고 만류하는 기성세대는 비겁한 사대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6·25를 경험하지 않은 그야말로 신세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미든 반미든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반미인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는 엄연한 상하 관계나 불평등한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국가간에도 마찬가지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이지만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한·미간의 공조 관계는 이러한 미국의 패권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하였으며,처음부터 비대칭적 관계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50여년간 한·미 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모두에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보호막에 의존하여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럼에도 반미운동은 나날이 확산되고 급기야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일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반미운동이라면 문제는 보통 심각하지 않다. 예컨대 우리가 원하는 대로 SOFA가 개정되고 외교관계가 대등해진다면 국민의 기분은 좋아지고 자존심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얻는 것이 무엇인가? 미국이 대등한 외교관계 수립을 인정했다고 해서 실제로 한·미 관계가 대등해지나?

거꾸로 반미운동과 미군 철수 주장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로 가뜩이나 불안한 동북아지역에서 주한 미군이 정말로 철수할지도 모른다. 동서 냉전시대 동아시아에 교두보가 필요했던 때도 카터는 주한 미군 철수를 시도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인들의 과잉 대응에 이미 많은 미국인들이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미국 내 반한 여론이 높아지면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한 국내 압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고 주한 미군의 전략적 중요성이 크지 않다면 한국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철수가 이뤄질 것이다.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경제력이 스스로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방어능력이나 북한의 침략 의도가 아니다. 막대한 군사력을 가진 한국과 북한이 미국의 개입 없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동북아지역을 상상해 보라. 이는 한반도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이 위험한 지역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거래도 뚝 끊어질 것이다. 결국 자존심을 지키려다 국가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인들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국가간의 대등한 관계는 시위나 협약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힘을 길러 실제로 대등해지거나,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라도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중국에 대한 조선의 사대주의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훌륭한 외교정책이었다. 지난 50여년간의 한·미 관계가 비록 불평등했지만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같은 기간,주체사상을 부르짖으며 자존심을 지켜온 북한은 어떻게 되었는가?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맹목적 반미와 생각 없는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은 국가의 장래를 불안하게 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성걸(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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