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내생각은…] 민족주의가 왜 좌파만의 것인가 ? / 이일환 문예창작대학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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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며칠 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문학가(이문열)가 중앙일보에 인터뷰한 내용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좌파나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진보 좌파, 보수 우파라고 고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현재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진보 우파' 세력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이 틀리든 맞든 문제가 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우선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즉 사물과 세상을 관념화하는 방식 자체가 고정화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고정화를 무너뜨리는 방식, 경계선을 허물어뜨리는 방식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늘 지대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의 소위 '체계'라는 것이 흔들리고, '사회'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편 가르기'도 이런 고정화의 한 소산이다). 둘째로 그의 말을 특히 문제 삼는 측은 소위 진보 좌파로 분류되는 이들인데, 보수는 나쁘고 깨 부숴야 할 것으로 몰아붙이고 대신 자신들은 진보를 표방하면서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우파'라는 개념이 나오면 자신들의 이점이 그만큼 희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진보 우파라는 말에는 찬동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제3의 길'을 걷는 영국 노동당의 블레어가 보수 좌파이고, 그의 뒤를 이어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수당의 캐머런은 진보 우파라고 한다면 아마 경악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한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서구에서는 예전부터 민족주의가 관념적으로 우파와 결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좌파와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같이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에선 이해할 만한 현상이다. 피식민지 경험이 없는 일본 같은 나라는 민족주의가 우파 세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의 특이한 현상으로 말한 까닭은 우리 국민성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개인주의는 거의 존립하기 힘들 정도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나라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소수 특권계층에 맞서 다수 대중이 부둥켜안고 살아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마을에 무슨 일이 있다 하면 온 동네가 법석인 분위기가 우리 국민성에 박혀 있다. 그래서 우리만큼 유행이 빠른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좌파적 성향, 즉 너만 잘 사느냐, 다 같이 잘 사느냐 하는 식의 성향은 서구 마르크스 이론의 영향 없이 거의 우리나라의 자생적 성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나라가 특이하다고 한 것은 이런 면에서 민족주의와 좌파적 성향이 결합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쨌건 다른 서구에선 민족주의가 우파와 결합하고, 세계지향주의는 좌파와 결합하는 모습인 반면 우리나라는 정반대인 것이 사실이다. 과연 꼭 그래야만 할까. 민족주의적 우파는 가능하지 않은가. 세계주의적 좌파는 어떤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이 진지한 문제가 제대로 성찰될 수 있는 유일한 마당인지 모른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가 자체 수정하면서 움직여 간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제 아무리 역사가 확 뒤바뀌거나 멈춰 있기를 원한다 해도 역사는 제가 알아서 조금씩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움직여 가는 생물이라는 것만큼은 믿는다.
이일환 국민대 문창대학원장·영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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