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야튜브'와 한국 야구문화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KBO리그가 미국의 최대 전문 스포츠 방송인 ESPN에 방영되면서, 현재 전 세계 130여 개국에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실황 중계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야구계는 각종 반응을 보였다. 크게 드론 촬영, 4D 리플레이 등 뛰어난 촬영기술과 타자의 배트 던지기를 비롯해 다채롭고 흥겨운 응원 모습 등에 대해 감탄을 하며, 38년 한국 야구의 멋진 한방이라는 설과 어설픈 판정 등이 노출된 예능 야구로 보인다는 설로 나뉘었다. 30개 구단을 거느린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해 실력의 우열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기장의 흥겨움과 기술의 뛰어남은 한국 야구문화만이 지닌 차별적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은 몸의 스킬로 이루어지는 스포츠 역시 더 큰 문화의 한 흐름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이밍_ 용맹함에서 경쾌함으로
한국 야구를 둘러싼 문화는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겠지만 디자인의 기본 영역인 네이밍을 잠시 살펴보자. 한국 야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해방 후 고교 야구와 실업 야구가 열기를 끌고 가고 있었고, 군사정권에 들어 대기업에 야구단을 창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의 프로 구단이 시작되었다. 이런 연유인지 한국 구단의 이미지는 기업과 구단, 팬들의 3박자만이 보이고, 지역적 특성은 희미한 느낌이다. 뉴욕 양키즈, 보스턴 레드삭스, 엘에이 다저스 등 그 지역에서 스토리를 지니고 자연스럽게 탄생한 이름과는 달리 한국 구단의 명칭은 작심하고 작명을 한 느낌이 강하다. 1982년에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 롯데 자이언츠, MBC 청룡 총 6개 구단이 출범하였다. 이후 차례로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2000년 이후 키움 히어로즈, SK 와이번스, kt 위즈, NC 다이노스가 창단되었다. 그동안 삼미 슈퍼스타즈, MBC 청룡,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는 퇴장하여, 현재 10개 구단이 활동하고 있다. 초기 네이밍은 사자, 호랑이, 곰, 용, 거인, 슈퍼스타 등의 이름을 통해 강하고 힘센 투혼을 실었다.
이후에는 쌍둥이, 레이더스, 유니콘 등으로 용맹스러운 느낌을 살짝 벗어버렸고, 2000년대 들어서는 위즈, 다이노스, 히어로즈, 와이번즈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고생대의 동물에 편승한 이름이 지어졌다. 이들 이름은 저돌적이며 힘찬 느낌보다는 경쾌하게 즐기는 신세대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마스코트_ 패밀리, 여성과 판타지
구단의 마스코트 역시 이름과 외양으로 구단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인형으로 분장하고, 특히 경기장에서 ‘깨방정’을 떠는 역할을 한다. 치어걸들이 화려한 몸매로 남성 관중들의 시선을 자극한다면 이들은 ‘귀요미’ 역할로 선수들과 장난치고, 넘어지고, 서로 싸우는 등의 희화화된 역할을 도맡는다. 이 깨방정 캐릭터 역시 한국 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블레오’는 블레오 행성에서 가족과 함께 지구로 온 천재 타자이다. NC 다이노스의 ‘단디’는 “단디하라”(똑바로 하라), ‘쎄리’는 “쎄려뿔라”(세게 때려버린다)라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kt 위즈는 수원구장에서 야구만을 바라며 숨어서 살고 있던 몬스터에게 ‘빅’과 ‘또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SK 와이번즈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와 부엉이를 데려오고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턱돌이’에게 ‘동글이’라는 깜찍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등 여성 팬을 겨냥한 여성 마스코트가 많이 등장했다. 이처럼 이들 역시 초창기 캐릭터의 강한 남성중심적인 모습을 벗어나 여성과 가족을 등장시키는 등 분방함과 친근함을 보인다.

 

팬덤_굿즈를 통한 구단과의 합일
또 하나 한국 야구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팬덤 문화이다. 특히 가장 열정적인 응원문화를 만든 팀은 롯데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의 ‘엘롯기(LG·롯데·KIA) 동맹’으로 불리는 팀들이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홈구장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데 초기에 일군 영광은 잃어버리고, 현재 중하권으로 밀려가 흘러간 애환을 공유하는 독특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한화 이글스에서는 ‘포기하지마라탕면’을 출시하였는데, 한화의 브랜드 컬러인 오렌지색에 마스코트인 ‘수리’가 들어가 있다. ‘9회말 2아웃까지 포기하지 마라’, ‘목쉴 때까지 포기하지 마라’ 등 팬들에 대한 충성을 부탁 혹은 요구하는 메시지도 등장했다. 한 주부 팬은 이 마라탕면을 끓이는 영상을 올려놓았다. 뜨거운 김이 솟는 냄비에서 면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과 소리는 감각의 힘으로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팬들은 이 라면을 먹으면 마치 종교 행사처럼 자신과 팀이 합치되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사실 모든 구단의 굿즈는 일종의 세속적 성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름, 마스코트, 팬덤만 보아도 한국 야구 문화의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문화는 유튜브 중심의 콘텐츠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경기장 내의 경기만이 주된 볼거리였다면, 이제는 선수들을 둘러싼 일거수일투족이 관전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를 들면 두산 베어스 유튜브 채널 는 방송 사각지대인 경기 전후 선수들을 볼 수 있는 ‘잠실 직캠’, ‘잠실 식단’, 2군 선수단의 일상을 담은 ‘이천일기’, 라커룸 출입구의 카메라로 촬영한 ‘무인퇴근길’ 등을 보여주며 12만 구독자를 거느린 인기 ‘야튜브’로 자리 잡았다. 선수들은 자선행사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교육 프로그램의 멘토가 되는 등 국민에게 위안과 힐링을 베풀어 주는 다각적 역할의 대중스타로 재탄생하곤 한다. 이런 관심은 대중이 특정 스타나 선수들의 일상을 점검하고 참견하는 시놉티콘(Synopticon) 현상을 낳는데, 이것의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여러 특성 중에서도 정점은 역시 열정적인 응원과 팬심이다. 특히 야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구단과 일체가 되어 춤추고 웃는 한국 문화의 강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야구는 이렇게 ‘해결자로서의 열렬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터랙티브 스포츠’의 대표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2018년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를 출간했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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