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끝나지 않는 비극,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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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또다시 군사 충돌이 발발하였다.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나고르노 카라바흐란 곳은 카프카스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분쟁 지역이다. 소련 해체 시 설정된 국경선에 따르면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었던 관계로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이 자국의 영토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1993년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당연히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양국 간의 갈등은 계속되어 왔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소식은 여러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것은 1988년이었다. 당시는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추진되고 있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소련에 집중되었던 때였다. 아직 한ㆍ소 수교 이전이기는 했지만, 국내에서도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소련의 88올림픽 참여 가능성 등으로 인해 소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따라서 88년 2월 이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들과 아제르바이잔인들 간에 인종 분규가 발생했을 때, 한국 신문들은 톱 뉴스로 이를 보도했다. 소련 내부 문제가 한국 신문에 크게 보도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나고르노 카라바흐라는 지명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소련이 다민족 국가로서 민족 간 분쟁과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당시에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이 굉장히 놀라운 뉴스였다. 돌이켜보면,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은 그 이후 소련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게 될 민족주의 운동,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분리독립 운동의 시발점과 같은 것이었다. 즉 소련 해체의 전조였던 것이다. 1988년 3월 1일자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련 말기에 시작된 영유권 분쟁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민족과 영토를 둘러싼 분쟁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독립 이후 양국은 군사적 해법으로 나고르노 카라바흐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르메니아는 1993~94년 전쟁을 통해 이 지역을 군사 점령했고, 그 이후의 모든 외교적 중재 노력은 헛수고였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와 적대 관계에 놓여 있다. 전쟁 후 수년 간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봉쇄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을 겪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인 가이드는 내게 세반 호수를 보여 주면서 이 호수에서 나는 생선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몇 년을 연명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국경 통과는 지금까지도 금지되어 있다. 몇 년 전 카프카스 3국 방문 시에, 아르메니아를 거쳐 아제르바이잔을 가지 않도록, 또한 양국 방문 사이에 반드시 조지아를 넣도록 세심하게 동선을 짜야만 했다. 그런데도 아르메니아 입국 시에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한 기록 때문에 조금 더 까다로운 심사를 받았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 분쟁의 원인은 아르메니아라고 볼 수 있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타국의 영토를 군사적으로 점령했으니 아르메니아가 비난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프카스 지역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의 기원이 훨씬 더 오래되고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까지 카프카스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는 일종의 작은 코스모폴리탄 지역이었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지역이 소련 시절을 거쳐 이제 민족국가로 탈바꿈하려니 민족의 거주 경계와 영토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러시아, 터키 등 주변 강대국에 의해 이 지역 국가들의 운명이 크게 영향을 받아왔으니, 1차 대전 전후에 영토를 크게 상실했던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 더욱이 1차 대전 와중에 오스만제국 치하에서 끔찍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겪었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이 남다른 것도 이해가 된다. 현재로서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이 외교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양국 간의 군사 충돌이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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