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공간의 품격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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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바라보며 왼편, 그러니까 정부서울청사와 광장 사이 교통섬에는 경찰 교통초소가 있다. 건물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이지만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고 문과 창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사람이 들어앉는 공간이 있다. 문제는 외관인데 대한민국의 가장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광장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하다. 기와지붕 그것도 팔작지붕을 석축 모양의 플라스틱 벽체가 받치고 있고 붉은색 가짜 기둥까지 전통건축의 흉내를 내고 있다. 광화문광장에 함부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더할 수 없다는 의지가 갸륵하기는 하지만 재료나 비례나 마무리가 저열해 바라보기 무안할 지경이다. 경찰청의 이름 모를 건축가가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비난할 생각보다는 광화문광장의 공간 특성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국건축의 집단적인 무의식과 욕망이 두꺼운 아스팔트를 비집고 나오는 듯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장 재구조화 사업과 몇 가지 점에서 닮아 있다. 첫째로 교통초소의 퇴행적 디자인은 전통의 계승이라기보다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체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서양은 오리엔트라는 상상의 동양을 만들고 서양 우월주의 시각으로 상대적인 타자의 이미지를 설정함으로써 서양 자신의 근대적인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탈식민주의 담론에서는 여러 열강은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다고 주장했는데 문제는 피지배국의 사람들도 자연스레 이러한 주장을 내재화한다는 것이다. 광화문 교통초소의 건축적 태도는 우리의 것이라기보다는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상상의 한국건축’을 표상한다. 전통 건축양식을 표피적으로 모방하는 태도는 분명 타자의 시선이다. ‘타자의 타자’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러니를 구성한다. 21세기 한국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자신감이 있다면 불가능한 조형이다. 그 실천은 지나치게 거칠어서 전통 보존이라는 선의보다는 열등감이 드러날 뿐이다. 둘째는 교통초소가 작은 잔디밭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도시의 어떤 부분이나 주변의 건물, 심지어는 초소가 참조하는 광화문 자체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돼 있다. 이 생뚱맞음은 잔디밭이라는 배경으로 강화되고 두드러진다. 자연요소가 도시 공간의 시각적, 물리적 흐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실례라 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이 초소가 적어도 5년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언급된 적이 없다. 그 길을 지났을 수많은 건축가와 학자와 전문가의 관심 밖에 있다. 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위해 토론회가 숨 가쁘게 열리면서도 이 작은 일상의 건축에 관해서는 논의된 적이 없다. 도시 공간을 스펙터클로 이해하는 함정에 갇혔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재개한다고 27일 발표했다. 놀랍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사업이 설계 경기를 통해 당선안을 확정하고도 보류했을 만큼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이 유고 중인 대행체제에서 이처럼 중대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강행할 만큼 시급하거나 합의된 사항도 아니며 개선도 없다. 게다가 광장은 서울시를 넘어서는 국가 단위의 상징공간이다. 그런데도 교통 흐름을 막으면서까지 광화문의 월대를 복원하겠다고 한다. 애써 복원한 경복궁의 경관에 적합한 대칭의 광장을 한쪽으로 몰아 흐트러뜨리겠다고 한다. 광장과 공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무를 심겠다고도 한다. 팬데믹 시대가 열리며 일상의 공간에 시선을 두게 되는 예기치 않은 효과가 있다. 무심하게 지나치던 소소한 일상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치를 되새기고 품격을 올리려는 노력이다. 일상대화에서 책으로 방송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광장 한 모퉁이의 초라한 교통초소가 일상 공간의 품격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어법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미래를 현시하는 듯해 불길하고 안타깝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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