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언론 관행'풀 취재'의 함정 / 손영준 (언론정보학부) 교수
언론계 관행 중에 풀(Pool) 시스템이라고 있다. 기자 두세 명이 행사나 사건을 대표 취재한 뒤 정보와 영상물을 다른 언론사와 공유하는 방식이다.

풀은 필요한 경우에 이뤄지며, 취재는 언론사별로 돌아가며 맡는다. 신문이나 방송에 가끔 '청와대 공동취재단' 또는 '국회 공동취재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풀 시스템에 의해 취재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언론사에게 풀 시스템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취재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거나 단순한 동정(動靜)기사인데 기자를 보내기도 그렇고 안 보내기도 그런 경우 괜찮을 수 있는 방안이다. 또 언론사간 지나친 과열 경쟁을 막을 수도 있다.

시간과 경비를 절약해 다른 뉴스에 집중할 수 있다. 풀 제는 기자나 언론사간의 사전약속에 따라 이뤄진다. 기사 내용과 영상 자료가 다양하지 못해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없지 않지만, 편의적인 장점 때문에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관행이다.

풀 제는 정보를 나눠 갖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풀 기자로 현장에 다녀온 기자는 행사 직후 타사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에 관한 팩트(Facts)를 공유한다. 사진이나 TV용 테이프도 같이 사용한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를 부각시키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자유지만, 원재료는 모두 공유한다.

풀 취재 약속이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사망한 미국 ABC 방송의 전 앵커 피터 제닝스는 2004년 7월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출두한 사담 후세인의 법정 진술을 풀 약속을 깨고 보도했다.

그 재판 보도는 미군 당국에 의해 사전에 풀이 걸려 있었다. 제닝스는 풀 기자는 아니었지만, 후세인의 법정 진술을 들을 수 있었으며 생방송으로 뉴스를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맡았던 풀 기사가 제공되기 전이었다. 제닝스의 보도로 풀 약속이 깨지자 CNN, NBC도 긴급 편성을 통해 보도에 나섰다. 10여분 사이에 이뤄진 일이다.

풀 기사를 기다리던 NBC만 늑장 대응했다. 그만큼 풀 시스템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뤄진다. 제닝스는 타사와의 보도 경쟁을 생각했을 것이다.

평범한 기사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됐을 경우는 위의 사례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풀 기자는 타사와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타사 기자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정보를 독점 보도하겠다면, 그 기자는 최소한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 기자가 중요한 정보를 자기도 보도하지 않고 타사에도 제공하지 않거나 또는 그렇게 하려 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2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북측 여성 접대원과 개성의 한 식당에서 함께 춤을 췄다고 한다. 요청에 못 이겼다는 당사자 해명도 있었으니 그 행위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그것 못지않게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국회 풀 기자단이 찍은 사진의 행방이다. 현장의 풀 기자단은 그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 그리고는 자체 판단으로 그 사진을 국회기자단에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타사의 독촉이 빗발치자 그날 저녁 6시경에야 넉 장의 사진을 제공했다. 사진 제공이 늦어져 어떤 신문사는 다음 날짜 신문 초판에 사진을 싣지 못했다.

사진 제공 여부를 놓고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자기 검열이다. 그것은 풀 기자단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풀 사진이 제공되지 않았다면 그날 그 일은 독자나 시청자에게는 사실상 없던 일로 되거나 아니면 의미가 달라졌을 것이다. 영상물이 주는 전달력 때문이다.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를 위해 존재한다. 정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몫이다. 행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행위에 대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원재료 자체를 덮거나 덮으려는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언론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풀 기사 제공을 둘러싼 석연치 않은 구석은 그래서 정치인 김근태 의장의 춤 행위 못지않게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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