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시론] 한반도의 유감스러운 현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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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 개입설은 문제가 없지 않다. 북한은 서해 교전에서 패하면 항상 보복을 해왔지만, 천안함 사건과 같은 도발을 감행한 전략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군과 미군의 정보 수집 능력을 고려하면 북한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이 해역을 침투하고 어뢰를 발사한 다음에 북한으로 조용히 넘어간다는 게 쉽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러나 아직 확실한 증거는 부족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개입설은 타당하게 보인다. 침몰 원인이 TNT 180kg에 상당한 외부 폭발인 것이 거의 확실한 만큼,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좌파 세력은 북한 관련설을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상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나는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 어뢰의 파편이 나오고 심지어 북한 잠수정이 발견되더라도 좌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버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원래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의 태도는 많은 한국인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 당일부터 청와대는 북한 공격의 가능성을 애써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정부측은 "북한 관련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청와대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다. 아직 증거가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만약 북한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한국 국민 중엔 군사적 보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북한 개입이 100% 확실하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청와대도 이 사실을 잘 안다고 본다. 지금 남북 간 대규모 전쟁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전쟁이 아닌 국지적 보복이 가능하다고 해도 한국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러한 작전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대규모 전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작전은 북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제 나라 서민들의 생존(生存)마저 무시하는 북한 세습 엘리트들에게는 이러한 작전으로 사망할 서민 출신 병사들의 생명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북한에서 국민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외교적 수단에도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북핵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 사회는 북한에 압력을 가할 능력이 없다. 중국만이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중국의 국익에 직접적으로 해(害)가 되는 핵무기를 개발하는데도 북한 체제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니 천안함 사건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대해 극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고 현실이다. 청와대가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분노한 국민이 '단호한 대응책'을 요구하게 될 것인데, 정부는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정부가 국민의 감정에 따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응책을 내놓지 않으면 약하고 용기없는 정권처럼 보일 것이다. 국민의 감정에 따라 대응한다면 위기가 초래된다. 이것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북한과 잃을 것이 너무나 많은 한국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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