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경향신문-경제와세상]분배 개선과 복지가 해답이다/조원희(경제학과) 교수

 

그리스의 국가부도위기로 촉발된 유로권의 위기는 세계 경제의 더블 딥 우려를 낳고 있다. 결론을 말한다면 이번 위기가 2008년 하반기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처럼 세계 경제를 급속한 경기하강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 예상되는 세계 경제의 진로에 중대한 변화를 시사한다.

첫째, 2~3년의 여유를 가지면서 질서있고 점진적으로 각국 정부가 공조하여 출구전략을 구사하고 재정적자를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관리·감축하려는 정책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부자 증세로 민간소비 늘려야

바꾸어 말하자면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 보다 신속하게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고 국가채무를 감축해 금융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둘째, 달러 약세와 유로화, 위안화의 강세 기조 하에서 미국 수출증대, 기타 국가의 수입증대를 통해 4~5년에 걸쳐 서서히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애로에 봉착했다. 유로화 약세는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블 딥은 아니지만 유럽, 미국, 중국 모두에서 올해 하반기 이후 경제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민간수요가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는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는 불가피할 것이다. 민간수요, 즉 투자와 소비가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가계의 과잉채무가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금융과 자산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더 이상 민간수요의 증대는 기대할 수 없다. 투자는 기술혁명이 전개되면 모를까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단계에서 증대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유일한 대안은 임계점에 달한 소득분배의 악화, 양극화를 개선하고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 재정지출을 늘림으로써 민간소비, 정부수요를 증대하고 투자도 덩달아 늘리는 길이다.

미국의 소득분배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6년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소득의 2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대공황이 오기 직전인 1929년의 상태와 일치한다. 그동안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한 것이 재정적자 증가의 주요 원인이었다. 유럽의 경우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분배악화가 지속되어 왔다. 중국의 과잉저축과 국내수요 위축, 이에 따른 과잉 무역흑자도 분배 악화의 결과이다. 중국의 경우 지니계수가 사회적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0.5에 근접하는 0.47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분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세금을 올려 과도한 국가부채에 따른 재정지출 삭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복지 강화를 위해 지출을 늘리는 일은 이들 나라의 국내 정치역학에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런 일은 당분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현 국면의 유일한 성장정책

상황이 이러하므로 서방 언론은 중국과 한국 같은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추구하는 나라에 내수확대를 통해 경제 안정과 성장을 추구하라고 계속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주문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수출(또는 수입대체)을 염두에 둔 서비스산업 육성, 기존 대기업의 수출확대,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에 매진하는 것이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인가? 간단히 말해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잘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계속 증가할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과거의 성장패턴으로 당분간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세계적 침체가 장기화하면 수출증대를 통한 성장, 일자리 창출 전략은 효과적일 수 없다.

이제 세계 경제의 흐름이 우리에게 진보적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악화된 소득분배, 복지 후진국을 탈피하려는 노력은 극단적으로 악화된 사회문제 해결의 길이기도 하지만 현 세계 경제국면에서 유일한 성장정책이기도 하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031829555&code=990510

이전글 [한국일보-삶과 문화]중국 바람이 거세다/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다음글 [아시아경제]진정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은형(경영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