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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삶과 문화]중국 바람이 거세다/김대환(관현악 전공) 교수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 랑랑은 클래식 음악인도 스포츠 스타처럼 대중적 인기와 부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중국의 클래식 열풍에 불을 붙였다. 랑랑의 다소 과장된 제스처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음악인들도 있지만 대다수 청중은 정열적 연주에 열광한다. 가난한 시골 소년이 부모의 헌신적인 뒷받침 속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앙드레 와츠의'대타'로 연주한 것을 계기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는 인생 역전을 이룬 스토리 또한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고 연주와 광고 수익으로 연간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랑랑은 변화하는 중국 문화의 상징이다.

해외 유명 음악원 입시에 합격한 중국 학생의 비율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특히 피아노 전공 학생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 랑랑이나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 입상한 윤디 리의 영향이려니 했는데, 최근 바이올린 분야에서도 메뉴힌, 영 비니얍스키, 파가니니 콩쿠르까지 연이어 중국계 학생들이 우승을 거머쥐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내한 연주를 가진 레이 첸같은 대만 출신 연주자들까지 포함하면 이제 콩쿠르나 유명 페스티벌에서 중국인들의 이름은 빠지는 법이 없다. 이런 추세라면 바이올린에서도 곧 제2의 랑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영재 아카데미에서 강의할 당시 알고 지내던 여학생을 만났다. 지금은 상해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녀로부터 그 곳의 교육 환경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입시나 실기시험 등 치열한 경쟁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일단 소수정예반에 선발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국의 저명한 교수들을 수시로 초빙해서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수 있고, 국제 콩쿠르 참가도 학교에서 신청서를 내고 반주자 경비도 지원해 준다. 현악기를 빌리는 문제까지 해결해 준다니, 국제 콩쿠르에 나가려면 수업 일수를 고민하고 복잡한 지원 절차와 비용 등을 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중국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큰 도시와 지방의 문화 수준 격차가 심하고 일부에서는 선생들의 뚜렷한 서열화로 인한 불공정성, 맡은 분량의 일 이외에는 열심을 내지 않는 등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중국은 공교육의 확실한 지원과 더불어, 성공할 경우 넓은 중국 시장을 통해 돌아 올 큰 보상의 매력이 합쳐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음악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뒤 아니 5년 뒤에는 '어떻게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며 그 성장세를 이용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묻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클래식은 더 이상 '서양 음악'이 아니라 세계인들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문화의 한 수단이다.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이 평가 되는 것도 그간 성장한 경제력과 함께 우리의 문화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0년 후를 내다본다면 영재 발굴만큼이나 가능성 있는 젊은 연주자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 김연아의 올림픽 메달도 국가와 기업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들이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또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 차원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6/h20100604211834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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