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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삐 풀린 ‘정치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부작용 크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직전까지 66명의 역대 법무부 장관 중에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사례는 초대 이인(1949)·천정배(2005) 장관뿐이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지난 7월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지휘권을 행사했다. 정부 수립 이후 단 네 번 등장한 수사지휘권 중 두 번을 추 장관이 행사했다.
 
역대 장관, 지휘권에 극도로 신중
의혹만으로 총장 배제해선 안 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은 물론 더 본질적으로 형사 재판이 규문(糾問)주의를 벗어나 탄핵(彈劾)주의로 이행된 역사적 배경과 연관해서 봐야 한다. 규문주의에서는 수사·소추·재판의 주체가 한 몸이다. 인치(人治)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근대 국가는 수사·소추·재판을 분리하는 탄핵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수사권을 검찰에 준 이유는 권력에 취약한 경찰로부터 독립해야 실질적인 탈(脫) 규문과 인권 보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일제 강점기 경찰의 무단통치의 역사적 반면교사도 작용했다.
  
수사·소추의 정당성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원통함이, 피의자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시민이 두 발 뻗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으려면 공정한 수사와 재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모든 권력은 자기편 사람은 보호하려 한다. 반대로 정적은 법의 이름을 빌려 망신주고, 처벌하고, 제거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검찰에 소추 기능에다 수사권까지 부여한 것은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를 추구하려는 권력자들의 원초적 본능에 재갈을 물릴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의 제도화 결과였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이런 취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본질적으로 법무부 장관은 정파적 인물이고, 집권 세력의 의중을 반영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늘 재갈을 벗고 싶어한다. 권력의 방종을 탐하며, 절제되지 않고, 적반하장의 궤변으로 반성을 모르는 인물이 장관의 자리에 있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곡(哭)한 뒤에 누가 죽었느냐고 물어본다는 말이 있다. 최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그 꼴이다. 이번에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근거는 지난달 18일 법무부의 감찰 결과였다. 그러나 그 감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추 장관은 지난달 22일 실무진이 검사 비리를 제보받고 은폐했는지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더니, 26일에는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김봉현(전 스타모빌리티 회장)만이 아니고 제3자의 진술, 술집 종업원의 진술도 있고 확인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검찰총장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내용과 모순된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감찰 결과를 수사지휘권 발동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걸 자백한 셈이다.
  
더구나 지난 7월 채널A 기자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 여부를 정하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지휘였으나, 이번 서울 남부지검 수사팀 배제 건은 단지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실정법 위반이다.
  
추 장관은 사기 범죄를 파헤치는 수사팀을 몇 번 공중 분해했고, 정략적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 수사팀 비리로 몰아가려 한다. 이 때문에 추 장관의 직권남용죄를 꼭 물어야 한다.
  
추 장관은 아들 휴가 특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미 27차례나 거짓말한 전력이 있다. 이에 “야당 의원이 27차례 윽박질렀기 때문”이라고 궤변을 늘어놨다.
  
법무부 장관이 가져야 할 신중·정직·절제·겸손은 찾아볼 수 없다. 추 장관이 자신의 수사지휘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휘두르는 감찰의 칼에는 재갈 벗은 경솔·거짓·방종·오만이 번뜩인다. 오죽하면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겠나.
  
준사법 기관인 검찰이 무력화돼 백성의 원통함이 뼈에 사무치고 억울함이 쌓이는 책임은 결국 임명권자에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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