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업을 하다가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강의실에 있는 컴퓨터와 빔프로젝터를 켜서 자료를 띄운 후 10여분 학생들을 바라보며 강의를 진행했다. 열정적일수록 스크린에 띄운 자료를 돌아보지 않고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잠시 뒤돌아서서 강의자료를 바라보는 순간 ‘헉’ 숨이 멎었다. 스크린이 내려와 있지 않아 강의안이 칠판에 바로 투영되어 있었고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 어쩐지 학생들의 표정이 뭔가 미묘하더라니. 그날 이후, 강의를 시작하면서 세팅을 꼼꼼하게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더 큰 교훈은 바로 학생들의 적극성을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이다.
“신입인데 일이 없어요” 불만에
“좋을 때니 즐기라”는 답은 곤란
적극성의 DNA 발현 위해서는
조직·선배의 의식적 노력 필요
슬기로운 조직생활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수동적이다. 강의실 전등이 다 꺼져 있어서 어둑어둑하여도, 모든 전등이 다 켜져서 스크린의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도,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하여 추워도, 더워도, 창문이 닫혀 있어도, 열려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교수가 들어와서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그냥 앉아 있다. 그러니 10분 동안 교수가 스크린 없이 강의를 진행해도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사고’가 생길 수밖에.
학기 초에 매번 신경 쓰는 일이 바로 학생들의 적극성을 독려하는 것이다. 학생 또한 수업의 주인임을 강조한다. 수업 시작 전에 알맞은 조도 만들어두기, 덥거나 추우면 적절한 온도 맞추기, 자리 배치 정돈하기 등등 학생들 스스로 수업 환경을 적극적으로 세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학생 스스로 수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스스로 바꾸어보는 경험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작게나마 실행함으로써 앞으로 조직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업무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중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적극성은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입사원 때의 경험이다. 적극적인 인재도 신입사원 시절의 경험에 따라 더 적극적이 될 수도, 소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구성원의 적극성을 발현하게 하는 것은 조직의 문화와 선배들의 태도다.
조직생활의 DNA가 입사 초기에 형성된다고 볼 때 신입사원에 대한 조직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 신입을 대하는 태도는 허술하다. 밀레니얼 직장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종종 ‘신입인데 일이 없어요’ ‘회사에 입사만 하면 바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도 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요’라는 고민이 종종 올라온다. 며칠 참다가 선배에게 말을 걸면 ‘그때가 좋을 때니 일단 즐겨요’라고 답하고는 바쁘게 지나가버린다는 하소연도 있다.
글로벌 대기업에서 얼마 전 큰 경진대회를 열었다. 신입사원들이 자신이 해낸 업무 혁신 사례를 발표하는 행사였는데 부상이 자그마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박람회(CES), 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박람회(MWC) 참관이었다. 그러니 거의 모든 신입사원이 이 대회의 수상자로 선발되어 글로벌 행사에 참가하고 싶어했다. 기회가 닿아 대회 심사위원으로서 본선에 진출한 30개 팀의 혁신사례를 듣게 되었는데, ‘아 이거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신입사원의 적극성을 일깨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와 자극이 있을까 싶었다.
혁신 사례는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신입사원들은 대개 선배들이 하던 단순반복적이며 손이 많이 가는 업무를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경진대회에 참가한 신입사원들은 이것을 하던 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스마트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고심한 결과 문제를 해결하는 패턴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파이썬 등 소프트웨어 기술을 익혀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큰 부상이 제공되는 전사적 경진대회를 계기로 신입사원들 사이에는 자신의 업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바꾸어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회사는 신입사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기술 및 자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선배들은 신입사원들의 개선방안을 귀담아듣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입사원들은 자신이 하는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조직과 선배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조직생활을 이렇게 출발하는 구성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신입사원에게 ‘적극성의 DNA’를 발휘하게 하는 데 조직과 선배의 노력이 이렇게 효과적임을 실감하면서 이번 학기에도 학생들의 적극성을 잘 독려해볼 결심을 다진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대 교수·대외협력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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