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Back to the 20's] 이의용 교수님의 20대 청춘 page

 유난히 맑은 오후, 여느때 처럼 분주히 질문지와 카메라를 들고, 멘토교수님으로 유명한 이의용 교수님의 연구실인 북악관 1101호를 찾았다. 혹시 실수를 하진 않을까, 예의없진 않을까 조마조마 했던 마음이 교수님의 환한 웃음에 편안해졌다. 질문지를 덮고, 이야기를 나누자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도 모르게 교수님에 대해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 처해있는 문제들, 남들에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까지 전부 털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학생이 편안하게 의지하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멘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긴 시간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얻은게 너무 많다. 국민*인들도 이 글을 읽고 꿈을, 목표를, 그리고 희망을 한아름 얻어가길 바란다.

Q. 선배님을 우리 학교 교수님으로 모시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 이미 13년 전부터 출강을 했고, 다른 대학에 가서도 짬을 내서 출강을 해왔지만 기쁘고  마음이 새롭습니다. 

Q. 교수님의 20대 시절,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73학번이니 저의 20대는 40년 전입니다. 그때 저의 관심사와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습니다. 무슨 철학적인 과제가 아니라, 당장 어려운 경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갈 것인가였죠. 참으로 절박한 문제였어요. 당장 눈앞의 문제가 중요했어요. 요즘 학생들처럼 미팅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어요. 과외, 학원 강사로 바쁘게 살다보니...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활을 의미없이 보내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남들이 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과 생각을 사회생활을 겸하면서 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이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계속 던지며 좀 더 먼 훗날에 무엇을 하면 살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였죠.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언젠가 그걸 적어보니 7가지쯤 되더라구요. 그 꿈이 거의 다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 밤중에 혼자 한참을 울었답니다.

Q. 그러한 삶의 바탕에는 어떤 원동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게는 아주 강력한 엔진이 있습니다. ‘자존감’이죠. 남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든, 나만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내가 다니는 학교를 어찌 생각하든, 나만은 내가 다니는 학교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이 나를 살리는 원동력입니다. 중요한 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죠. 그러한 마음은 제 신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Q. 대학시절 열정을 쏟았던 활동은 무엇인지요?

지금도 캠퍼스를 오가노라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수없이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사랑’이 만듭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 학교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교수님에 대한 사랑, 공부에 대한 사랑..... 이런 것 없으면 먼 훗날 학교엘 와도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요.
누가 뭐라든 국민대학은 저를 안아주고 제게 꿈을 심어준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래서 바쁜 학창시절 중에도 학교를 위해 많은 봉사를 했어요. 교수님들, 교직원님들도 절 많이 아껴주셨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랬고요.
1학년 때 합창단을 만들었고, 2학년 때 영자 신문사를 만들었고, 3학년 때 총학생회 문예부장을 하면서 응원가도 만들었어요. 4학년 때에는 졸업준비위원장을 맡아 비용을 아껴 쓰고 꽤 큰 돈을 장학금으로 남기고 졸업했습니다.
사실 저의 첫째 재능은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입학하지마자 “합창단 할 사람 모여라!”라는 모집 광고를 제가 써서 붙였죠. 그랬더니 남자들만 몇 명 모였습니다. 여학생이 부족해서 의상학과, 가정학과 교수님들의 도움도 얻고 집중적인 공략도 해서 어렵게 단원을 확보해가며 기초를 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지휘도 했죠. 합창을 하면서, 전공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예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우정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하고요.


Q. 어떻게 여학생들을 집중 공략했는지 궁금한데요?
마침 제가 영문과였고,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기에 여학생들에게 영어 원서 시험 준비를 해주거나 리포트 작성을 도와주기도 했죠. 가정학과 수업을 신청한 적도 있어요. 제가 예상한 시험 문제가 적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Q. 교수님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대학교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함성으로 가득하던 시기였죠? 교수님은 재학생 시절 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기말고사를 리포트로 대신한 학기가 많았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시대적인 아픔에 동참하며 ‘운동’에 참여했고 경찰서에도 다녀왔습니다. 밖에서 시위를 하지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시위를 이끌던 후배가 도서관에 들어와 공부하는 저를 가리키며“이의용 선배!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라며 시위 동참을 호소하여 여러 학생들 앞에서 저를 난처하게 한 일이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Q. 20대 초반에 가장 큰 가치를 두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예나 지금이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요? 스무 살의 청년에겐 공부보다도 마음에 맞는 친구나 이성 만나는 게 가치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나름 가치를 두었다면‘열심히 살자!’였어요. 소위 ‘빽’도 없고, 실력도 시원찮으니 “정직하고 부지런히 살자!”가 유일한 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저의 태도를 좋게 생각하고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生命’이라는 말이 ‘살라는 명령’이잖아요? 저는 별로 좌절이나 방황하지 않고 그 명령 따라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Q. 이번 학기에 교수님의 수업 ‘인생설계와 진로’를 흥미진진하게 수강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자신을 ‘교수’보다 ‘멘토’로 불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지요.
저도 40년 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제 주변에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족이나 교사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수님들도 사회생활 경험이 충분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럴 의지가 부족해서일 겁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시대의 주인공인 청년들이 자기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주도해나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경험을 살려 후배들의 인생을 돕는 멘토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을 본격적으로 도울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여럿 구상하고 개발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생설계와 진로’라는 과목입니다. 지금까지 22학기 동안 교양 선택과목으로 진행해오면서 학교가 큰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다른 대학에서 불러서 그곳에 프로그램을 이식하였죠. 그러던 차에 모교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이번에 1학년 교양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였어요. 그리고 이를 책임지고 진행할 교수로 저를 불러주신 것이죠. 솔직히 저를 모교 교수로 불러주신 것보다, 앞으로 입학하는 모든 후배들에게 인생을 설계할 기회를 주신 것이 훨씬 더 고맙습니다.


요즘 ‘힐링’이니 ‘멘토’니 하는 말이 많이 유행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그만큼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교수들도 군림하고 통제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역할에서, 멘티들 곁에서 그들을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친구같은 ‘멘토’로 변신해야 할 때입니다. ‘인생설계와 진로’를 통해 교수와 학생의 수직적인 관계가, 사랑과 존경의 멘토와 멘티 관계로 회복되도록 돕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공’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행복’이 빠진 성공은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성공’을 준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자동차 여행에 비유해볼까요? 행복한 여행을 하려면 차의 성능이 좋아야 합니다. 특히 엔진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강력한 엔진은 없습니다. 대안도 없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만 중얼거리며 신음해서는 안 됩니다. 엔진을 업그레이드하고 “아파도 일어선다!”를 외쳐야 진짜 청춘입니다. 자신의 정체감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청춘입니다. 행동하면 불안은 사라집니다.


둘째로, 목적지와 그곳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정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황을 하게 되고, 하루하루 달리는 것이 지루한 중노동이 됩니다. 좋은 나침반, 상세한 지도, 내비게이션보다 중요한 건 목적지입니다. 그리고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건 그곳에 가서 해야 할 일이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아파하고 불안해하면서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아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도 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앞이 캄캄할수록 불빛이 필요합니다. 인생이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검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앞이 캄캄할수록, 불안할수록 목적지를 명확히 하고, 거기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목적지로 가는 최단의 고속도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갈라지고, 막히고, 끊어지는 길이 더 많습니다. 갈라지면 선택해야 하고, 막히면 돌아가야 하고, 끊어지면 이어가야 합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다양합니다. 여러 중간 도시를 거쳐서 서울로 옵니다. 그 중간 도시도 여행에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철저한 전략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대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늘 비전을 이룰 목적지로 오기 위해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왔습니다. 그러나 그 중간 과정들은 오늘 목적지만큼이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 중간 목적지였습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첫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바로 세우기 바랍니다. 둘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그것을 이룰 목적지를 정하기 바랍니다. 셋째,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운전방법도 배우고, 차도 정비하고, 기름도 충분히 넣고, 동행할 친구도 구하기 바랍니다. 그 과정이 바로 대학 4년 동안 해야 할 ‘진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당면한 취직 준비만 하지 말고,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인생’을 설계하기 바랍니다.

오늘 인생설계와 진로 수업에서 이의용 교수님은 서른의 나를 그려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벅찰지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행동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이 행동들이 10년 후 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문제가 아무리 힘들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 이 글을 읽은 국민*인은 어디에 어떤얼굴로 서있을까? 이 글이 10년 후 당신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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