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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평범한 인간이 주는 용기/김대환(관현악전공) 교수
짧은 원고인데도 수십 번씩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원고지에 직접 쓰지 않는 시대인 것에 감사한다. 장편을 쓰는 작가들뿐 아니라 교향곡이나 오페라처럼 복잡한 기보(記譜)를 해야 하는 작곡가들도 컴퓨터의 편리함에 고마워할 것이다.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다듬고 또 다듬어 탄생한 대부분의 명작들과 달리 단숨에 써 내려간 모차르트의 악보에는 펜으로 수정한 흔적조차 없다고 한다. 머릿속의 스코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뿐이라는 모차르트의 말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일화의 주인공인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모차르트 같은 천재 예술가들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천재라는 개념 또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랏거스 대학의 피터 키비 교수는 그의 저서<천재>에서 빛나는 재능의 모차르트와 고통과 불운을 극복하고 음악사에 우뚝 선 베토벤으로 대변되는 천재의 두 개념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지만 일단 영감에 사로잡히면 신들린 듯 곡을 완성하는 모차르트는 플라톤적 천재론의 상징, 즉 신에게 '사로잡힌 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부르짖듯 모차르트는 '신의 도구'였으며 하늘이 내린 재능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운명의 목덜미를 움켜쥐겠노라!"고 맹세하며 불굴의 의지로 험난한 인생을 헤쳐 나갔다. 기존의 규칙을 깨뜨린 창조적 작곡 능력과 청각 상실조차 넘어선 영웅 베토벤이야말로 주도권을 쥔 자, 즉 신마저 '사로잡은 자'로서 롱기누스적 천재론을 대표한다. "모차르트는 기교의 완벽함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베토벤은 장엄한 창조물의 탁월함을 우리에게 과시한다."는 베토벤 전기 작가 요한 알로이스 슐로서의 글은 천재의 다른 두 유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괴테와 칸트,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의 천재에 관한 사상이 흐르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명작들 앞에 천재 개념에 관한 담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덮으려는 순간 흥미롭게도 바흐와 하이든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거장 바흐와 하이든이 천재 대열에서 제외된 것에 키비 교수는 그들이 근면한 자수성가형 인물로서 두 가지 천재 유형에 다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바흐는 제자를 가르치는 일 외에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연습시켜야 했으며 궁정악장으로서 회의에 참석하고 라틴어 수업도 맡아야 했다. 그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많은 부양가족을 위해 매주 작곡을 해내는 책임감 있는 바흐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재의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하이든 또한 힘든 청년기를 보내고 30세가 되어서야 번듯한 직장을 갖게 된 후 고용주 에스테르하지 후작과 부딪히지 않고 성실하게 보내며 악단원들을 보살폈으니 철없는 모차르트나 고집불통 베토벤과는 구별되는 것이 명백하다.

키비 교수는 바흐와 하이든을 일벌레 천재로 지칭할 수도 있으나 그들이 진정한 천재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미학과 철학 분야의 석학인 키비교수가 다소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바흐를 천재 대열에서 밀어낸 사실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평생 한 사람의 음악만을 들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흐를 꼽을 것이다. 그런 위대한 바흐가 천재가 아닌 성실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만큼 우리의 삶에 용기를 주는 것이 있을까.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09/h20100917210200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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